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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03. 2020

말 것: 기억을 믿어버리는 실수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3일 차

기억은 차곡차곡 쌓이지 않는다. 웹브라우저에 페이지 방문 내역이 기록되듯 차례대로 저장되는 기억은 없다. 네이버나 구글에 '뭐였더라' '아, 그 뭐지'를 검색한 사람이 많은 이유다. 마찬가지로 '어디서 봤더라' '그, 왜, 있잖아'라는 말로 시작하는, 맥락을 포함하지 않는 단상을 꺼낸 경험이 누구나 여러 번 있을 것이다.


가끔 기사를 쓰다가 불완전한 기억이 사실처럼 적히는 경우가 있다. '기억을 믿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섬뜩한 일이 있었다. 3개 팀의 인터뷰가 모두 한날 한 장소에서 잡힌 날이었다. 사무실이 있는 명동에서 인터뷰 장소인 여의도까진 거리가 꽤 있었기에 일부러 같은 날로 인터뷰 일정을 몰아 정한 것.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인터뷰도, 사진 촬영도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문제는 기사를 쓰면서부터였다. 업무 내용이 서로 비슷한 팀들인 데 다가 녹취를 한 번에 풀고 나니 내용이 헷갈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겼다. 일단 써놓고 고치자는 마음에 문장을 쏟아놓은 후 차근차근 맞춰갔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을 맺고서야 깨달았다. 3번째 팀의 성과를 2번째 팀 원고로 끌어다 써버렸음을. 다행히 아직 누구에게도 뵈지 않은 그 원고를 나는 절반쯤 드러내야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누구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한 치 의심도 없는 믿음'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일상적이다. 그렇다고 자주 의심하며 사는 태도가 딱히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오랫동안 인이 박인 생각 회로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그래봐야 삶이 더 팍팍해질 따름이다.


따라서 일단 써놓고 사실 여부를 가름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팩트 체크'다. 보통 이 단어를 기사나 논문에 밝힌 사실과 대조해 틀리지 않은 정보를 남기는 수준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순 정보를 전하는 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글은 필자만이 확인할 수 있는 펙트가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즉 이 문장이 진짜 당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들은 말을 겪은 바로 치환하진 않았는지, 과장이 과해 사실을 헤치진 않았는지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이다.


다행히 녹취록을 쓸 때 일부러 인터뷰이의 모든 말을 받아적는 나는,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2번째 팀 원고를 수정할 수 있었다. 평소에 팩트 체크를 위한 장치로 마련해둔 습관이 쓸모가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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