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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04. 2020

말 것: '글감'이라는 편견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4일 차

월간 사보는 크게 6단계를 거쳐 발행한다. 이 중 하나라도 건너뛴다면 제대로 된 책이 나오기 어렵다.


①기획안 작성  ②취재, 기사 작성(a.k.a. 마감)  ③디자인  ④교열  ⑤클라이언트, 편집실 확인  ⑥인쇄

 

1단계는 글감을 찾는 데 집중하는 시간이다. 기획안은 게재할 칼럼의 주제와 내용, 형식을 포함한 페이퍼다. 분량은 A4 3장 정도. 신선하고 밀도 있는 기획을 짜기 위해 신간 서적을 뒤지거나 인기를 끈 유튜브 영상, 기사, 인물 등을 조사한다. 그런데 무엇을 다룰지 찾다 보면 머릿속에서만 말을 굴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둘 떠오르는 생각이 여러 계산에 가로막혀 쉬이 기획안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 계산이란 주제와 들어맞는지, 매체 성격에는 어울리는 콘텐츠인지, 최근 부정 이슈가 엮인 콘텐츠 또는 인물이 아닌지 등이다.


이 과정에서 마땅히 써도 됐을 아이디어가 아득해지기도 한다. 억울하게도 그런 아이디어는 주로 한참 이따가 다시 떠오르는 탓에 기획으로 옮기기에 요원해진다. 낭패를 반복하다 보니 간단한 요령이 생겼다. 일단 문장을 써놓은 뒤 쓰임새를 정하는 것. 조금이라도 연결점이 보이는 아이템은 떠오르는 대로 쓰되, 쓸모가 없는 대목은 버리면 그만이다.


한번은 사보 주제가 '조직문화'였다. 이를 '선물'이라는 키워드로 풀면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선물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과 조직의 성향을 살펴보고, 나아가 직장에서의 일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기회를 갖자는 취지였다.  반나절 넘게 고민하며 쓴 이 기획이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다. 지지를 얻지 못한 기획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5분도 안 돼 단숨에 쓴 몇 줄짜리 기획이 그대로 취재로 이어진 적도 있었다. '시너지'를 주제로 다루며 전 임직원이 이용하는 사내 메신저의 운영진을 소개하는 아이템을 쓴 적이 있다. 편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음지에서 애쓰는 이들을 조명하자는 의미에서였다.


이러한 경험을 거듭하며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글감이 되는 여부를 미리 가름하는 것은 편견일 확률이 높다고. 애초에 글감을 정하는 주체는 필자가 아닌, 필자가  문장이라고. 따라서 일단 써보고 문장에게 판단을 맡겨 보자고.  점에 비춰   '글은 살아있다' '글은 인격체다' 같은 말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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