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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08. 2020

할 것: 이불 킥 리스트 만들기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8일 차

잊고 싶은 창피한 일이 떠오를 때 ‘이불을 찬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표현에 공감하지 않는다. 주로 그런 기억은 자려고 누웠을 때 보다 머리를 감을 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굳이 내 식으로 바꾸면 ‘머리를 감다가 소리를 지른다’ 정도가 될 것이다. 가끔 음량을 조절하지 못하면 놀란 가족이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살짝 연 문틈으로 쓰라린 눈을 뜬 채 거짓말을 한다. 눈에 샴푸가 들어갔다고.


출처: 국립국어원 공식홈페이지(www.korean.go.kr)


그럼에도 이해를 돕기 위해 ‘이불 킥’이라는 표현을 쓰겠다. 글쓰기와 관련한 이불 킥은 저마다 교훈을 품고 있다. 예를 들면 맞춤법이 틀렸음을 지적 받는 경우다. 그럴 리 없음에도 나의 한글 실력이 밑천을 드러낸 듯한 기분이 든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와 검색엔진이 고도화되고부터 맞춤법 오류는 지식이 아닌 부지런함의 문제로 바뀌었다. 검색하면 언젠가 쓰임새에 맞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맞춤법이 틀려서 제대로 창피를 당한 사람이라면 일찍이 이 사실을 알 것이다.


글쓰기와 관련해 직접 겪었던 이불 킥을 두 가지만 소개한다.


부장님 진심으로 죄송했습니다.


“안녕하세 부장님!”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이 썼을 법한 이 말은 실제로 내가 쓴 문장이다. 메일을 써놓고 이곳저곳 손보다 ‘요’를 빼먹은 듯하다. 그리고 메일을 확인한 부장님의 답장. “네.. 이렇게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점 두 개가 담았을 메시지를 오래도록 생각했다. 친절한 인터뷰이었기에 더욱 죄송했다. 그 뒤로 나는 메일을 보내기에 앞서, 첫 줄에 담긴 인사말과 수신자의 직급을 살피는 습관을 들였다.


또 하나는 나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다. 여행 칼럼을 쓰며 ‘발길이 잦다’고 써야 할 것을 ‘발길이 잦아든다’라고 써버렸다. 정반대의 의미가 된 것이다. 여행지에 발길이 잦아든다면 더 이상 찾을 이유가 없을 터다. 쓰는 내내 인지하지 못하다가 팀장님이 표시한 후에야 알아차렸다. 이후 나는 글을 읽다가 ‘잦’을 발견하면 유독 눈길이 간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줄일수록 좋겠지만, 이미 쓰고 뵌 글을 되돌릴 수는 없다. 돌아보면 이불 킥을 할 때마다 주의할 항목이 하나하나 늘어났다. 이것이 모이면 더욱 정밀하게 글을 살필 수 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실수를 0에 수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이불 킥(이 남긴 교훈) 리스트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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