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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07. 2020

말 것: 남산 같은 말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7일 차

바로 어제(2020년 10월 6일)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표한 따끈따끈한 조사 결과다. 우리나라 산 이름 중 가장 흔한 것은 ‘남산’이라고 한다. 전국에 남산이 101개가 있다고. 똑같이 불려도 저마다 이름 붙인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말 그대로 남쪽에 있어서일 수도 있고, 산 아지랑이 또는 산 이름을 뜻하는 한자 남(嵐)을 붙인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이름이 흔하다 보니 익숙해서 가져다 썼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결국 모두 남산으로 불리게 됐다.


사실 이름의 유래쯤은 몰라도 그만이다. 알쏭달쏭한 명칭도 자주 보면 친근해지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큼은 남산 같은 단어를 주의하는 편이다. 자주 쓰이는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 문맥을 헤치지 않아서 갖다 쓰기에는 무난하지만, 간혹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변모한다는 맹점이 있다. 꼭 필자가 진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마치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처럼, 눈과 귀에 익은 단어가 별안간 튀어나오는 것은 사람의 본성일 테니.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은 ‘개선’이다. 더 나은 상태로 탈바꿈한다는 의미인데, 예전 상태를 언급하지 않고, 그저 개선했다고만 요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독자는 그저 과거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됐겠거니 하고 알아들을 것이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이 어떤 점에서 효과가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같은 맥락에서 ‘무엇이든’ 역시 위험하다. 충분히 살펴보고 예외가 없을 때 쓰는 단어지만, 지금 썼던 몇몇 문장을 잘 곱씹어 보면 작은 일일지라도 예외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또 주로 과장하거나 치켜세우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의식적으로 덜어내려 하는 단어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도 결국 정보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다. 그전까지 머릿속에 든 내용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생각들이 남산처럼 어디서든 들어볼 법한 이름으로 나타난다면? 여전히 실체가 없거나 뻔한 말로 전락할 터다. 내 글에 '남산'이 최소한으로만 남고, '아차산' '지리산' '설악산' '백두산'처럼 고유하고도 명확한 말들이 다채롭게 어울렸으면 좋겠다.


오늘 쓴 메시지는 14일 차에 게재한 '말 것: 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를 자주 쓴다'와 비슷하다. 역시 강조하고 싶은 말은 별수 없이 거듭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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