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d Oct 23. 2020

할 것: 당연한 일에서도 이유 찾기

어제보다 잘 쓰는 법_53일 차

종종 있는 일인데, 걷다가 유독 튀어나온 보도블록을 차고는 한다. 그때마다 엄지발가락이 욱신욱신하다. 아파서 "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행히 마스크를 껴서 다행히 주변에는 잘 들리지는 않을 터다. 한때 이처럼 강렬하게 느낀 감각이나 감정은 글로 풀기가 쉬울 줄 알았다. 분명히 느꼈다면 문장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플 때 "아"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이 지나서도 가끔 또다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쓰는 데 몰입하다 보니 독자를 배려하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담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부담스럽고 주관적인 글이 된다. 혼자 보는 글이라면 상관없겠으나 독자에게 뵈는 글이라면 공감을 사기 어렵다. 물론 감정을 배제하고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감정, 감각의 이유를 누가 보든 납득할 수 있도록 전해야 독자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겪고 쓴다'라는 두 행위 사이에 한 가지 과정을 끼워 넣었다. 바로 '인과를 맞추고'다. 즉 감정이나 감각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최대한 친절하게 풀어보는 것이다. 이쯤에서 허락 없이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전한다.


부쩍 아버지가 옛날 서구 영화를 보신다. 지금도 1990년 작인 <델타 포스2>를 틀어두셨다. 어쩔 때는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리볼버를 찬 카우보이가 황야를 누비기도 한다. 왜 자꾸 연출도 조악하고 스토리도 심심한 옛날 영화를 보냐고 수차례 물어본 끝에 답을 들었다. "이것저것 계산할 필요 없이 결말이 단순하잖아." 아, 생각을 꺼두는 시간이 필요하셨구나. 서부극을 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한 예시지만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잘 나타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결국 밀도 높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왜?" "어째서?"라고 물으며 인과를 맞춰가는 집념이다. 그러다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 지점을 만나면 반가워할 일이다. 부족한 지점을 찾은 것이고, 그곳을 보완하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원인을 파헤쳐 명쾌한 단어로 짚어내는 글은 몰입감을 뿜어낸다.

작가의 이전글 말 것: 성의는 소모품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