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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24. 2020

할 것: 남의 취향을 본 뒤, 문체가 달라졌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54일 차

사회적 거리 두기 전까지는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취미를 즐기는 직장인들을 인터뷰했다. 수어 자격증을 공부하는 금융사 직원, 학부 전공이었던 금속 공예를 다시 시작한 통신사 직원, 회사 전 직원 중 3분의 1 이상이 소속된 꽃꽂이 동호회 등등…. 본업이 아닌 일에 열정을 발휘하는 사람을 꽤 만났다.


그전까지 원래 나는 단정적인 문체를 선호했다. '하고 있다' 보다는 '한다'라고 쓰며 미래의 가능성까지 함부로 욱여넣었고, '그럴 수 있다' 보다는 '가능케 했다'라고 써서 인과를 맺어버렸다. 글에 확신이 넘치면 독자에게 메시지가 더 분명하게 닿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뚜렷한 취향을 가진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할수록 내 문체에 변화가 일었다. 우선 단정적인 문체로 풀 수 없는 지점이 속속 생겼다. (취미에 관한 인터뷰는 업무 성과자, 사회 명사 인터뷰와 사뭇 다르다. 더욱 개인적인 내용이 오간다.) 자기 취향은 자신만이 알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단정적으로 쓴다면 인터뷰 내용이 왜곡될 우려마저 있었다. 또 남의 생각을 내 식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양심도 작용했다.


이후 사실을 위주로 쓰되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한 문체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꼭 인터뷰이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려 했던 건 아니다. 내 글을 한 사람이라도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차원에서였다. 이렇게 내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독자를 하나둘 넓히는 일이 결국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쓰는 길로 통할 거라 믿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다.


한번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연습에 열중하던 사회인 야구단을 취재했다. 마침 그날은 대회가 있었는데 10점이 넘는 점수 차를 내며 지고 말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법도 한데, 그들은 웃으면서 "우린 이기든 지든 고기를 먹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나는 그날 더그아웃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을 원고 중 마지막 두 문장에 갖다 썼다. '굿 아이(Good Eye)'라는 말인데, 타자가 배트를 무리하게 휘두르지 않을 때마다 경기 흐름을 읽는 안목을 칭찬하는 것이다.


A 야구단 회원들은 이미 굿 아이를 가진 게 아닐까. 눈앞의 결과가 어떻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를 발판 삼아 한층 즐겁게 뛸 방법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돌아보건대, 사실 문체가 달라지기 전에 생각이 달라졌던 것이다. 사람은 서로 놀랍도록 달라서 함부로 넘겨짚을  없다는 사실을  깊이 되새긴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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