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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28. 2020

말 것: 나도 모르게 부풀리고 말았다

어제보다 잘 쓰는 법_28일 차

아, 큰일이었다. 강연, 기획,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터뷰이를 어렵사리 모셨건만 돌아오는 답변 중 건질 만한 내용이 변변찮았다. 재차 질문을 해도 '독서는 창의성을 길러 주니까' '다른 기사에 정리돼 있어요'라고 뻔한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심지어 인터뷰 막바지에 추천하는 책도 화두가 된 신간이자 베스트셀러여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책이었다. (책 이름을 언급하면 그분의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으니 밝히지 않겠다.) 인터뷰 내내 막막한 심정이었던 것에는 그분의 사정으로 기존에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점도 한몫했다.


내가 인터뷰 준비가 부족했거나 태도가 무례했던 건 아니냐고 묻는다면 적극적으로 변명하고 싶다. 일단 섭외부터 시작해 최소 4개월은 걸려 성사된 자리였고, 그 시간 동안 인터뷰이의 글이나 관련 기사를 꾸준히 모니터링했다. 또 애초에 나는 그분의 바쁜 일과 중 2시간 정도를 빼앗는 철저한 '을'로서 감히 무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난 곳이 차를 판매하는 장소였음에도 손수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갔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저리주저리 적고 보니 구차하다. 어찌 됐든 인터뷰를 마쳤으니 원고를 써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 하나는 나도 모르게 부족한 분량을 과장으로 채우려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30년 넘도록 '오직 능력 하나로 버텨' 임원까지 오른 면모를 강조한다.

마치 영화 주인공이 시련을 겪는 것처럼 '인터뷰이가 겼었던 시련과 비통함을 과장'한다.

지금 몰두하는 일이 지난 30년의 직장 생활 동안 쌓은 '노하우를 압축한 것'인 양 말한다.


초고를 쓰고 보니 위와 같은 대목이 눈에 걸렸다. 눈치 빠른 독자는 위 세줄만 읽어도 당시 내가 얼마나 따분한 글을 썼을지 짐작할 듯 싶다. 억지스러운 글이 됐다. 역시, 부풀리면 부유한다. 묵직하게 와닿아야 할 글이 어느 하나 뇌리에 박히는 문장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결국 모든 텍스트를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돌이켜 보면 부풀리기도 결국 '귀찮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두 번째 초고'를 쓰며 자료 조사 차 보았던 기사들을 다시 훑었다. 그리고 과장이 들어찼던 자리를 인터뷰이가 걸어온 이력과 그가 실제로 밝힌 당시 심정을 엮어 채웠다. 기나긴 이력 덕분에 눈에 걸린 세 가지 대목을 빼고도 넉넉히 채울 수 있었다. 마땅히 처음부터 해야 했을 일이었다.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다. 글쓰기는 익숙함과의 싸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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