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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Nov 06. 2020

할 것: 붓 말고, 카메라를 들자

어제보다 잘 쓰는 법_67일 차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지닌 강인함의 출처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20년 가까이 아들의 운동 생활을 지원하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 하루를 2, 3인분으로 살아냈던 그녀에게 아들은 감히 약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묵묵히 훈련장에서 자신과 싸워서 이길 뿐.


마침내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자마자 관중석에 앉은 어머니를 달려가 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감격의 울음을 터뜨리며 마주한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그 사진을 전해 받아 원고와 함께 실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눌러 담아 쓰더라도 그 사진보다 두 사람이 겪어낸 시간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 경험에 비추어 문체를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게 됐다. '촬영하는 문장'과 '그려내는 문장'이 그것. 전자는 마치 사진을 찍듯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은 연출 요소가 최소한으로 포함된 사진을 뜻한다.) 따라서 사진은 촬영자의 눈에 비친 대상이라기보다는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대상'이라고 받아들이게끔 한다. 더 자연스럽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는 몰입감으로 연결되는 대목이다.


반면 후자는 그린 사람의 존재를 선명하게 한다. 에곤 실레나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을 보고 '인간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화가마다 그림에 담으려 했던 표현과 감정에 주목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머니와 선수의 사진 속 상황을 그려내는 문장으로 쓴다면 이런 식일 것이다.


눈물범벅이 돼 껴안은 두 사람에게 관중들은 끊이지 않는 박수를 보냈다. 그 자체로 20년 가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두 사람의 노고를 위로하고 승리를 축하하는 세리머니 현장이었다. 길지 않은 포옹에는 지난 세월이 여실히 담겨있었다.


감정도 미사여구도 과한 문장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가 지나치게 드러났다. 이제 촬영하는 문장으로 고쳐보자.  


K 씨는 "숱한 고생 끝에 메달을 딴 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A 선수는 우승자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어머니 K 씨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곧장 관중석으로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온 모자는 그렇게 서로 통하고 있었다.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하는 느낌이다. 문장이 안내하는 대로 상황을 큰 불편 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다. 당연히 기사에는 촬영하는 문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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