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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08. 2020

말 것: 내가 쓴 대로 읽혀야 한다는 아집

어제보다 잘 쓰는 법_8일 차 

"아, 정말 가능하시다고요?" 분명 인터뷰를 요청한 사람이 할법한 말은 아니었다. 이루마 작곡가를 인터뷰이로 섭외하며 일정을 잡자는 매니저 팀장님의 말에 덜컥 이 말이 나와버린 것.


빌보드 클래시컬 앨범 차트에서 1위(지난 8월 15일 기준 22주 연속)에 이름을 올린 이루마 작곡가는 국내외 팬을 비롯해 전 세계 매체와 소통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짬을 내준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건대 만나기 전 기대에 부풀어 미리 그려본 시나리오가 결과적으로 대부분 빗나갔다. 그중 가장 크게 빗나간 이야기를 전한다.


이루마 작곡가는 'River flows in you'를 소개하며  "TV에 나오는 춤을 보며 별생각 않고 따라치다가 만든 곡"이라고 했다. 일찍이 유튜브 조회 수 1억 뷰를 돌파한 곡이자, 빌보드 차트 1위 앨범 <The Best: Reminiscent, 10th Anniversary>에 수록된 곡이다. 장르가 다를 뿐 BTS의 앨범과 견줄만한 성과를 이룬 만큼 창작 배경에 미사여구를 붙일 법도 한데 그저 "평소처럼 피아노를 치다가 만들었다"고만 했다.


조금 더 답변을 끄집어내고 싶은 마음에 여러 차례 비슷한 질문을 던지자 뜻밖의 잠언이 돌아왔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만든 곡인데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제야 저도 곡의 의미를 찾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저는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 곡을 만들고 있는 듯해요."


나는 직접 쓴 글에 대해 소유욕이 강한 편이다. 한때 모든 문장의 의미는 내가 정한 대로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독자가 마땅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라고. 이를 문제 삼는 양심에게는 '창작자라면 고집이 있어야지'라며 스스로 눙치기도 했다. 얕고 좁은 견해였다. 편집자가 아닌 이상 내 글을 여러 번 읽을 독자는 없다. 그리고 글쓴이는 문장의 의미를 유도할 뿐 그 의미를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독자다.


창작자로서 이루마 작곡가는 나와 정반대였다. 곡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기꺼이 듣는 이와 분담할 줄 아는 아량 넓은 음악가였다.


자리를 마치며 이루마 작곡가가 앨범에 사인을 해서 건네줬다. "중고나라에 올리셔도 돼요"라는 농담과 함께. 마지막까지 솔직하고 수더분한 기운에 나는 한층 머쓱해졌다. 아, 내가 품고 있던 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었구나.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글은 그 자체로 사랑스러워서 손대지 못 하게 만드는 유혹이 따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생각이 고집인지 아집인지 구별하려고 애쓴다. 아직 대부분 아집이었던 걸 보면 이루마 작곡가가 가진 창작 마인드의 경지는 나에게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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