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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향해 차근히 가기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

내가 10대 -20대를 거쳐오면서 나는 매우 큰 방황을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허우적 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차근차근 밟아 나갔어야 했지만 그 당시의 내 젊은 패기는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없었다.


그냥 꿈을 크게 가지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동의를 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단계를 경험하고 지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갑자기 모든 것을 한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요행이었다. 당시의 나는 과욕이 넘실거렸고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야생마와 같았다. 결국은 그 폭주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졌다.



기나긴 시기의 폭주는 30대 초반을 지나 중반이 되자 끝났다. 폭주는 끝났지만 폭주의 후유증은 나를 깊게 할퀴었고 후회의 잔상만 남겼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요행을 좆은 여행자도 못 된 망상가라고.


30대 중반을 지나 후반의 초입 어느 날, 나는 롭 무어의 <레버리지>를 읽었다. 그 때 눈에 박힌 듯한 문단이 멍청한 나를 세게 한 대 때렸다.                   


  

수많은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만의 고유한 목표를 발견하고 실행함으로써 인류에 가치를 더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은 성공을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지만, 비전을 찾지 못한 사람은 공허감을 느끼고, 좌절하고, 때로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명확한 비전은 건강한 정신과 짝을 이루기 때문에 공고한 비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빼앗지 않는다.
롭 무어-레버리지 53P


그리고 내게 말 했다. 네가 한 것은 무엇이었냐고. 네가 한 노력은 무엇이었냐고.

그리고 나는 답했다. 내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한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그것이 노력이었을까? 나는 비전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아니었다. 나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니었고, 무언가를 기여하기 위해 비전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했었을 뿐이었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망상가였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내 머릿속의 신기루만을 바라보면 그것에 반드시 닿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다. 그것이 좌절과 공허감을 주었고, 나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딱히 뭔가 좋아서 했던 것이 아닌 진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단지 남이 그것을 하기에 좋아보여서 미친 말처럼 날뛰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꿈이었을까? 비전이었을까?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그 목표를 바라보되, 현실적은 것부터 실천할 줄 아는 현실주의자들이다.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이라는 것 없이 마구잡이로 밀어넣으면 다 될 줄 알았던 내게 계획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꿈과 비전을 다시 세우게 해 준 등대였다.



나는 이제껏 잘못된 방식으로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책이 좋아서 읽었지만 그 안에서 본질을 찾지 못했던 바보였다. 그런 독서는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와 같다. 그리고 결국은 풍족한 배 안에서 엘도라도를 찾다가 헤메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책과 헛된 꿈의 망령으로 남게 된다.


비전을 찾고자 하는가? 비전을 찾았는가? 그러면 우선 현재의 나를 살펴보라. 그리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계단이 무엇인지 찾으라. 거기서부터 내 꿈으로의 계단은 내가 밟을 수 있도록 한칸씩 차곡차곡 쌓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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