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Shoot for the stars."
유명 강사 김미경 님이 쓴 ‘마흔수업’에 보니 “사람이 살면서 뭔가 이루려고 노력할 때 희망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더라고요. 버킷리스트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하셔서 제가 재취업에 성공한 후 하고 싶을 일들을 적어봤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아무리 생각해도 세 개 이상 생각이 나질 않아요. 더 생각나면 나중에 추가하기로 하고 지금 당장 생각난 것만 우선 적어봅니다. 취직이 다 금전적인 것과 관련된 것만은 아닐 텐데, 저 참 속물입니다. 적어놓고 보니 모두 다 돈과 관련된 것들이네요.
첫째, 401(K) (퇴직연금)에 저축하기. 미국에서는 취직해서 정규직으로 일하면 매년 2만 3천 불가량 강제 저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저축은 할 수 있지만 59.5세가 될 때까지는 페널티 없이 출금할 수 없습니다. 아주 작은 업체가 아닌 이상 대개의 회사들이 401(K)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직원 기여분의 50%까지 매칭해 주는 회사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다닌 회사들은 안타깝게도 회사 매칭이 아예 없거나 너무 작았었습니다만 세금이 부과될 때 여기에 저축한 돈은 빠지기 때문에 절세 효과도 상당합니다. 401(K)에 납입한 돈으로 인덱스 펀드도 사고, 개별 주식에 직접 투자도 가능합니다. 오롯이 내가 일해서 번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애정이 가는 투자처입니다. 어쩌면 남편이나 아이들보다도 낫습니다. 내 노후를 확실히 책임져 줄 곳이니까요. 빨리 취직해서 401(K) 넣고 싶어요. 요즘 같은 상승장에 인덱스 펀드에 넣어두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텐데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둘째, 온 가족이 식당에서 외식하기. 1월 16일에 정리해고 된 후 아직까지 한 번도 외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요리를 더 자주 하기 시작했고, 남편과 저는 냉장고에 있는 거 대충 챙겨 먹고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을 주문해 줍니다. 배달비 아끼려고 물론 직접 음식을 픽업합니다. 음식을 시켜 먹을 기회가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다 보니 아이들이 뭘 먹을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며 메뉴 선정에 온 정성을 다합니다. 한 번은 치포틀레(Chipotle)라는 멕시코식 인스턴트 음식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었나 봐요. 큰아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하던지요. 돈이 없어서 저희가 외식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지금 시점에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중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외식중지’에는 좀 더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선 취업하기 전까지는 외식이라는 호사를 누리지 않겠다는 제 ‘강력한 의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게 풍족한 세상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라도 ‘설계된 부족함’을 경험하게 해 주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한국 온라인 서점에서 책구매하기. 제가 돈을 벌 때만 해도 2-3달에 한 번은 한국 예스 00 서점에서 해외배송으로 책을 구매해 봤습니다. 한 번에 10권 정도 사면 배송비가 60-70불 정도 나왔는데, 전체 금액으로 치면 미국에서 사는 비싼 한국책보다 약간 더 쌌습니다. 올해 들어 남편이 책 1-2권 산 것 말고는 새 책을 사지 않고 있어요. 대신 도서관이나 저희 집에 있는 책들을 다시 읽습니다. 이미 2-3번 읽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저는 보통 책을 읽을 때 제가 맘에 드는 부분을 발견하면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하거나 짧은 노트를 남기고, 남편은 볼펜으로 줄을 긋거나 별표시를 합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제 생각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또한 제 남편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도 됩니다. 어떤 문장에는 별을 10개나 그렸는데, 별 그릴 때 얼마나 힘을 줬던지 종이가 찢어질 것 같습니다. 남편이 그린 별에는 그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늘 좋은 남편, 아빠가 되고자 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하지만, 새 책 사고 싶어요. 아쉬운 마음을 사고 싶은 책들 리스트를 적으며 달래봅니다.
올해 안에 재취업에 성공해서 남은 401(K) 저축량 2만 불을 달성하고, 아이들 데리고 식당 가서 한 사람당 음식도 2개씩 시켜주며 기분 좋게 종업원에게 넉넉히 팁도 주고 싶습니다. 나중에 어느 맛집에 갔었고, 무슨 책을 샀는지 여러분께 공유할 날이 꼭, 그것도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