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ies plant seeds of hope"
요즘 같아서는 도서관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실직하고 몇 주는 남편이 집에 함께 있어줬습니다. 저는 공부하고, 남편은 일하다 점심밥을 차려먹고 짧은 산책도 함께 했었지요. 요새는 남편이 회사에 자주 나가기 시작해서 저 홀로 도서관에 갑니다.
명품관, 맛집 오픈런은 돈이 들지만 도서관 오픈런은 ‘공짜’입니다. 미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렇지만 최고의 ‘공짜'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휴일이 아닌 이상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매일 문을 엽니다. 아침 10시 개관 시간 5-10분 전부터 벌써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도서관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저도 함께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 지루한 틈을 타 도서관 건설에 기부한 사람들 명단을 읽습니다. 아는 이름도 몇몇 보이네요. 명단에서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전 유튜브 대표 수전 워츠치키를 찾았습니다. ‘나도 나중에 기부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선 취직부터 해야지!' 취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웅장하게 도서관에 입장합니다.
지금 사는 동네로 처음 이사 온 건 첫 아이가 유치원 들어가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미국은 5살에 유치원에 입학하는데 유치원부터 정규 교육에 포함됩니다.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상 사는 지역에 배정된 공립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취학아동이 있는 집들은 대개 학교 입학 전에 이사를 서두릅니다. 지금 동네로 이사 와서 첫 2년은 월세를 살다 평생 다 못 갚을 정도의 엄청난 대출을 받아 지금의 집을 구매했는데, 집 구매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도서관에는 책도 많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스토리타임, 세금 보고 서비스, 이민자 대상의 영어수업 등 많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외국어 섹션도 잘 구비돼 있습니다. 한국어 책도 책장 하나를 채울 정도는 구비돼 있는데, 김훈, 박완서, 신경숙 등 한국의 유명한 작가들 책도 꽤 있습니다.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신청하면 원하는 책도 구매를 해준다는데 전 아직 그런 행운은 맛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주로 공부하는 곳은 2층의 서편입니다. 도서관에 2-3달 동안 거의 매일 오고, 책상도 2인용, 4인용 10개 정도밖에 없는 구역에 앉다 보니 이제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단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소파에는 늘 노숙자 아줌마 3분이 앉아계십니다. 같은 소파를 공유할 뿐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 말씀 나누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우선 화장실에 들른 후 제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제 구역에 앉는 분들은 대개 저처럼 개발자인 것 같습니다. 다들 애플 랩탑을 쓰고, 한참 생각하다 타자 몇 번 치고를 반복합니다.
도서관에 오시는 분들 중 단연 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 한 분 계십니다. 머리가 새하얀 80대로 보이는 중국 할머니입니다. 거의 매일 오시는데 1시쯤 오셔서 중국책을 필사하거나 영어로 된 서양화가 책을 보십니다. 3시쯤 되면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가 와서 모시고 갑니다. 아마 댁이 걸어가긴 먼 거리인가 봅니다. 가끔 도서관에 안 오실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이면 ‘혹시 편찮으신 건 아닌가'하고 걱정이 됩니다. ‘할머니는 몇 년째 도서관에 오고 계신지,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분의 스토리가 참 궁금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차 한잔 나누며 얘기를 나눠봐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나이 들면 꼭 할머니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도서관에 갑니다. 저는 도서관이 좋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책도 있고, 사람도 있고, 희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