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도 스물하나도 아니지만 영원할 줄 알았어

스물다섯도 스물하나도 아니지만 영원할 줄 알았어

by Yoga Girl Sum

매트 위에 앉아 내 안으로 들어가면,

흘려 보내야 할 것들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그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고,

나는 열병처럼 계절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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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글지 않은 그 풋풋함과 자신감은

내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 사람의 말투, 습관, 다양한 경험까지,

나에게 없는 것들이 마치 퍼즐처럼 내 안에서 맞춰졌다.

뜨거운 바람을 막아줄 든든한 어깨가 좋았다.

웃을 때 반달로 휘어지는 눈이 귀여웠다.

아무렇지 않게 내 뺨에 손을 올리던 습관이

내 안에 균열을 일으켰다.

마스크 속 뜨거운 입김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로 이어졌다.

무더위도 잊은 채 맞잡은 손끝의 간질거림은

나를 다시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수영도 못하는 나는 구명조끼도 없이

분홍빛 바다에 속수무책으로 빠졌다.


오랜만에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평범한 20대가 된 기분이었다.

길을 가다 몇 번이고 마주치는 흔하디 흔한 청춘.

매일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출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위로를 주고 받는 일상.

그 평범함이 누구보다 특별하게 느껴졌다.




쉽게 얻은 것들은

그만큼 쉽게 떠난다 했던가.

드디어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들은

빠르게 볼품없어졌다.

수많은 약속은 말없이 휘발되었고,

여름 밤의 긴 허무함만 남았다.


우리는 몇 번씩 돌아섬을 주고 받았다.

여름 끝의 공허함은 계절을 벗어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름의 잔상은,

계절이 지나도 내 안에 머물렀다.

나는 구명조끼도 없이,

공허함 속으로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참 다정히도 내 이름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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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 없는 내가 유일하게 끈질기게 붙잡은 건

‘과거’였다.

손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잡고 있는 것들이 매일 나를 찔렀다.

사람은 변하고,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데

도무지 어떻게 하는건지 알 길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방패 삼아 안으로만 기어들어갔다.

쿰쿰한 그곳이 내 자리 같았고,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보다가도

다시 움츠리기를 반복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고 싶었지만,

관성의 법칙은 늘 강하게 작용했다.


그때의 나는

솜방망이 같은 ‘쨉’을 날릴 기운도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뒤로 물러서는 것도 두려웠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안전조차 점점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언젠가는 잡아 먹힐 줄 알면서도

나는 무기력하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차라리 어서 나를 삼켜 없애버리길 바라면서.


그렇게 오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감각은

낙엽처럼 바스라졌다.

나의 특별한 평범함은

다시 빠르게 무채색이 되어갔다.

그것은 립스틱을 몇 번 덧바른다고 나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붉은 덧 칠 위로 어두운 그림자만 질 뿐이었다.


겉모습만 멀쩡한 회색인간이 되었을 무렵,

나의 ‘쨉’이 드디어 다시 나를 깨웠다.

몸이 너무 가라앉으니,

물 밖으로 튀어오르는

미약한 반사작용처럼.

그게 나한테는 ‘쨉’이었다.

비록 수명은 짧은 ‘쨉’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마저도 절실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줄 ‘무언가’ 였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만 있는 모임으로 나 자신을 던졌다.

단 몇 시간이라도 눅눅한 현실에서

발 한 자국 뗄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새로운 우주를 열어줄 문 하나를 만났다.

그때는 그 문이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하고, 우직할 줄 모른 채

도망만 다녔다.


나에게 절실한 건 ‘누군가’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내 두 발로 일어서고 싶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보조장치에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내 힘으로 걷고, 뛰고, 숨쉬고 싶었다.

그래야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밀물처럼 새로운 인연들이 들어왔고,

나는 그 안에서 힘없이 허우적댔다.

신선함은 어느새 피로가 되어

이제는 나조차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기력은 마치 갯벌과 같았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갔다.

너무나 잘 알면서도,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지 않다가,

끝내 모든 기운이 다 빠져 가만히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내 앞에 마법처럼 나타나

‘정답’만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치의 오차 없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도록.

오늘의 점심을 선택하는 것조차

나에게는 온마음의 애씀이 필요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계절이 흐르는 동안

나는 가면을 쓴 채 일상을 지탱하였다.

그것만이 ‘평범한 20대’에 속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지하철 속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젠 표정을 가려줄 마스크도 없는데,

다들 어떻게 사는걸까.

이렇게 아프고 뜨거운데,

이 안에 몇이나 되는 이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안고

’괜찮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른다움’이라는 책임 아래

감정을 삭히고 발걸음을 옮기는걸까.

얼마나 새카맣게 탄 마음들이

땅 아래에서 질주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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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게 받은 상처는 무기력을 지나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졌다.

툭 치면 울음이 나올 것 같다가도

눈물 없이 우는 법에 익숙해져갔다.

나는 매일 한강 위의 지하철에서 표정 없이 울었다.


그렇게 뒤로 물러나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의 새로운 우주는

그런 나를 말없이 지켜봐 주었다.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때까지도 그 온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그 우주 어딘가에서 ‘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