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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CM 첫 문구페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했을까

브랜드의 대화법

by 공현주
*출처: 무신사 뉴스룸

행사는 끝났지만 여운은 짙게 남았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짤막한 후기 만으로는 아쉬워, 커뮤니케이터 관점에서 29CM 첫 문구 박람회 '인벤타리오(INVENTARIO)'의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을 정리해 봤다.




패션에서 라이프로 가는 길목에서

큐레이션 하면 딱 떠오르는 브랜드가 둘 있다. 컬리 그리고 29CM. 식품과 패션, 시작점은 달랐지만 근 몇 년 간 두 브랜드 모두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그들의 큐레이션 DNA를 이식하는 작업에 열심이다. 컬리의 첫 오프라인 행사는 '식품'이었지만 29CM는 패션이 아닌 '문구'를 택했다. 왜일까.


문구는 친근하다. 일상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다. 가격도 착해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다.(물론 부담스러운 가격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물건이 좋은 일상을 만들어준다'는 29CM의 철학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기에 매우 적합한 카테고리다. 문구가 실용보다 취향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취급할 수 있는 아이템도 기존보다 훨씬 다채로워졌다. 문구 카테고리를 선점하면 리빙 카테고리로 자연스럽게 확장하기도 수월해지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중 문구 카테고리를 선점한 곳도 아직 없다.


더욱이 29CM의 주 타깃은 2539 여성이다. 문구의 주 타깃과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29CM 입장에서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길목에서 문구만큼 매력적인 카테고리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자체적으로 배포한 문구류 거래액 보도를 보면, 내부에서도 플랫폼과 카테고리의 핏을 어느 정도 검증한 듯 보인다. 이번 전시는 문구 카테고리에서 29CM의 성장속도를 가속화하고 독보적 입지를 굳히기 위한 일종의 선빵 같은 것 아니었을까.


큐레이션 브랜드 모두가 주인공이 되도록

29CM는 '인벤타리오'에 60여 개 브랜드를 큐레이션 했다. 문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밨을 대형 브랜드부터 팬층이 탄탄한 소형 브랜드까지 고르게 엄선했다. 전시 공간은 코엑스 2층의 '더 플라츠'라는 곳이었는데, 코엑스 전시를 많이 가본 나도 좀 생소한 전시장이긴 했다. 하지만 전시장이 너무 커서 부스별로 빈부격차가 생기는 코엑스의 일반 홀과 달리, 더 플라츠는 60-70개 정도의 브랜드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비교적 고르게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공간이 엄청 크지는 않다 보니 어느 구간에서는 병목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만약 29CM가 더 욕심을 부렸다면, 더 큰 공간에 더 많은 브랜드와 함께 전시를 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큐레이션'은 말 그대로 브랜드를 '선별'해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큐레이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 적지도 않은 브랜드를 보여주기 위해 내부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크게 소외되는 브랜드 없이 모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적절한 규모와 공간을 선정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첫 행사는 '가능성'을 보는 실험적인 성격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테스트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규모였을 것 같고.



당신의 취향의 문구는?

박람회의 꽃은 당연 참가사들의 부스이지만, 브랜드가 이 전시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브랜드관'이라 생각한다. 브랜드관은 보통 전시장 중앙부나 끝쪽에 자리하는데, 이번 전시는 29CM가 제안하는 문구 큐레이션의 가이드를 경험하고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29CM는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취향의 문구'로 잡고, '수집하는 사람(taste collector)', '몰두하는 사람(deep diver)', '기록하는 사람(daily archivist)', '영감을 주고받는 사람(daily motivator)', '창작하는 사람(creative creator)' 총 다섯 가지 문구인 페르소나를 설정했다. 브랜드관에는 각각의 문구인에 맞는 29개의 문구템이 소개된다. 문구인은 물론 문구가 낯선 이들도 29CM가 제안하는 문구들에서 자신의 취향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인벤타리오에 참여한 브랜드를 29CM가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는지, 그 기준과 정의를 관람객에게 잘 전달하고 설득하는 건, 관람객들의 전시 몰입을 돕는 매우 중요한 장치였을 것이다. 브랜드와 내 취향의 연결고리를 찾는 순간, 관람객들의 몰입도는 배가 될 테니까. 브랜드관은 본격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기 전 문구인 모드를 장착하기에 매우 훌륭한 브릿지였다.

브랜드관 한쪽에는 자신의 문장을 만들어 세상에 하나뿐인 '인벤타리오 파일'을 만드는 고객 참여 이벤트도 진행됐다. 브랜드관 입장 전 안내받은 QR코드를 통해 '문구인 테스트'를 한 후, 여러 디자인의 스티커와 그리드 노트, 펜을 선택해 파일을 자유롭게 꾸미는 이벤트였다. 꾸미기와 DIY를 즐기는 문구인의 정서와 취향을 한껏 반영한 설계였다.

인벤타리오 파일 (*출처: 월간디자인 <낯선 단어에서 시작된 탐험, 인벤타리오>)
문구인 테스트 결과


이토록 다양한 문구인

이번 전시 커뮤니케이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문구인'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사전 홍보부터 현장까지, 문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됐다. 29CM는 이번 전시를 위해 인벤타리오 별도 계정을 만들어 페르소나별 문구인 인터뷰를 시리즈로 공개했다.

*출처 : @inventario.seoul

현장에서는 포인트오브뷰가 '창작의 도구, 문구'를 테마로 주제관을 열고, 창작자 10인이 실제 작업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선보였다. 같은 도구도 창작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을 보며, 문구에 대한 단편적인 시선이 한층 입체적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도구란 단지 관리하거나 성능이 뛰어난 걸 넘어서 사용할 때의 마음가짐과 창작에 대한 태도까지 변화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도구 하나로도 창작 과정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포인트오브뷰 김재원 디렉터


포인트오브뷰 '창작의 도구, 문구' 주제관


숭, 응원대장 올리브 등 브랜드/마케팅 분야 인플루언서와는 한정판 굿즈를 만들었다. 인플루언서들이 행사 전부터 굿즈를 소개하며 전시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인플루언서의 아이덴티티(영감/응원/기록)에 어울리는 브랜드를 각각 매칭해, 해당 브랜드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브랜드의 색깔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게 만든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출처 : @2tnnd


문구 브랜드와의 연합전

29CM는 혼자가 아니었다. 문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든든한 파트너가 함께 했고, 그 외에도 자체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문구 브랜드들이 홍보에 적극 가담하며, 전시가 열리기 전부터 현장의 모습까지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29CM는 '인벤타리오' 전시에 2만 5000명을 모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플랫폼의 '첫 오프라인 문구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29CM의 브랜드 파워는 물론 이런 우군들의 협력이 더해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출처 : 각 브랜드 인스타그램

인벤타리오는 결국, 문구 자체보다는 문구'인'의 세계를 탐구하고 경험하는 자리였다. 이번 전시는 취향이 뾰족하고 심오한 이들이 많은, 거대하고 단단한 유니버스에 사람들을 초대해야 할 때,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할지 참고하기 좋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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