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서른 번째 이야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교육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늘 다짐했었다. 조급함은 내려놓고 아이를 기다려주는 연습을 하자고, 아이와의 관계를 늘 먼저 생각하자고, 천천히 하나씩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도록 이끌어주자고 말이다.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줄 알았냐고 내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아이의 1학년이 끝나가는 11월의 어느 날, 육아는 결코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아이 교육은 늘 고민의 연속임을 배우고 또 배운다.
2학기부터 매주 하루 이틀은 받아쓰기 연습도 해야 하며 그림일기를 일주일에 한두 번은 쓰고 검사를 받는다. 아이가 학원을 가거나 학습지를 하지 않지만 하루에 3,40분 정도는 집에서 학습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아 아이에게 매일 과제를 주고 있다. (충분히 놀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건 쉽지 않음을 깨달은 뒤) 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복습하거나 문제집을 2장씩 풀기, 그리고 짧은 영어책을 따라 읽고 단어를 몇 개 따라 쓰기. 영어는 어떤 계기로 8월부터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는데 조금씩 재미를 붙이는 것 같아 계속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문제집도 꺼내서 해야 할 부분을 펼쳐주고, 영어 공부도 일일이 준비해주고. "집에 오자마자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잠깐 동생 하원하고 올 동안 숙제하고 있으렴" "간식 먹고 숙제할 거야?" 이렇게 숙제를 해야 한다는 걸 인식시켜주었다.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 아이가 학교 다녀온 뒤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게 싫어졌다. 아침에도 등교 준비하는 것 때문에 자꾸 말을 하게 되는데 학교 갔다 와서까지는 아니다 싶었다. 계속 말하는 사람도 싫고 듣는 사람도 싫고. '엄마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하면 얼마나 좋아' 싶지만 참으로 먼 이야기다.
가끔은 아이가 뭔가 재미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하다가, 너무 안 한다 싶어 시키면 아이가 짜증을 내며 하려고 할 때 화가 나기도 하고. 아이의 상황을 살피며 숙제할 타이밍을 일러주는 일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말을 해도 "잠깐만요" 하고는 자기 할 일을 계속할 땐 속에서 열불이 나기도 했고, 한참 놀고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해야 할 일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땐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싶어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어떤 엄마들은 이렇게 시키고 잔소리하는 게 싫어 학원을 보내거나 학습지 선생님을 부르기도 한다고. '학원 갈 시간' '선생님 올 시간'은 어떻게 거부할 수 없으니까. 아이가 충분히 놀고, 또 공부해야 할 땐 하는 평화로운 일상은 이렇게 멀기만 한 것인지. 아직 1학년인 아이를 두고 내가 벌써 걱정을 하고 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1학년이지만 아이의 스케줄을 이렇게 일일이 확인시켜줘야 할까. 언제까지 아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하나 챙겨줘야 할까 하는 고민하게 되었다. 보통 아이가 학교 마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오는데 와서 간식 먹으며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집에서 놀기도 하고. "무조건 과제부터 하고 하고 싶은 걸 해라"고 정해야 할지, 하지만 날씨와 상황에 따라 그게 안 될 때도 있다. 요즘 같이 해가 빨리 질 때는 놀이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숙제를 하다 말고 둘째와 밖에 나가게 될 때도 있고.
그래서 아이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네가 엄마 이야기를 안 들어줄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이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할 시간이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는 "엄마 이야기 잘 들을게요"라고 말했지만 아이의 즐거움 앞에서 그 의지는 충분히 꺾일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엄마가 수첩에 날마다 네가 할 과제를 적어놓을게. 집에 오자마자 하든, 쉬다가 하든 그건 네 마음이야. 엄마는 하나하나 이제 시키지 않을 거야. 대신 저녁 먹고 나서 하지 않은 게 있다면 네가 하고 있는 걸 중단하고 그땐 바로 하기로 하자. 그때만 엄마가 이젠 정말 할 시간이라고 말할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수첩에 매일 하던 일들을 적어놓았다. 이제는 책도, 해야 할 페이지도 아이가 직접 찾아서 하는 거다. 아이는 평소처럼 학교 갔다 와서 바깥에서 열심히 놀았고 집에 와서 열심히 간식을 먹고 책을 읽고 하고 싶던 놀이를 했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을 적은 수첩을 책상 잘 보이는 곳에 두었거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하루에 한 번만 말하기로 했으니까 꾹 참자..' 하며 그냥 내 할 일을 했다. 둘째가 집에 오고 같이 나가서 또 열심히 놀고 집에 와서는 또 실험이며 종이 접기며 이것저것 하다가 저녁 먹고 7시 30분. 단 한 개도 하지 않았다. "7시 30분이야. 수첩에 적힌 것들 하자" (기다린 자의 당당한 요구!)
아이는 잠시 삐죽거리더니 약속했으니까 책상에 앉고 수학 책부터 하나하나씩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과제 하나를 끝내고 또 하나를 하고 또 받아쓰기 연습을 하고. 한숨을 쉬는 아이를 보며 속으로 '그러길래 조금씩 좀 해놓지'. 그렇게 40분 정도 집중해서 할 일을 다 끝냈다. "한꺼번에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잘했네~"(내일부터는 미리미리 하자) 칭찬해주고.
몇 번 저녁에 몰아서 하며 힘들었으니 이제는 조금씩 나눠서 하겠지 싶었지만 이건 엄마의 착각. 어제도 어김없이 놀다가 집에 와서는 숙제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늘은 일기도 써야 하고 좀 할게 많은데 조금씩 좀 하지..' 엄마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서 책을 보다가 신나게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신나게 그림도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얼른 준비해라 말하는 것에 요즘 부쩍 지쳤던 나는 멸치 똥을 따며 마음을 릴랙스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이는 저녁을 먹고 1시간 정도 부지런히 숙제를 했다. '하.. 미리미리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저녁 먹고 하는 게 정착이 되면 어쩌지..?'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아이가 그 시간에라도 약속을 지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본인도 하다 보면 조금씩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리라 생각하며, 어떻게든 하는 모습을 먼저 칭찬해줘야겠다. 내가 하는 잔소리는 아이가 내 계획대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불안감에서 비롯된다는 걸 느낀다. 폭풍 잔소리가 나오려 할 때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두 번 중 한 번은 그냥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내려놓기 연습을 해본다. 그래도 잔소리가 나오려 할 때는 멸치 똥을 따거나 생산적인 릴랙스를 하는 걸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