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얼마 전 첫째가 거실에서 놀다가 갑자기 큰 방에 들어가서는 문을 잠갔다. 요즘 갑자기 작은 방 문을 잠근다든지 할 때가 있는데 가끔은 방에 있는 엄마나 아빠 핸드폰을 하느라 그럴 때도 있고, 장난을 친다고 그럴 때도 있고. 이날은 나도 모르게 "왜 문을 잠가"하고 손잡이를 계속 돌렸다. 결국 문을 열고 나온 아이에게 "문 닫고 놀아도 괜찮은데 엄마가 걱정도 되니까 잠그지는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냥 아이가 밖에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해도 괜찮았을텐데)
아이들이 크면 방 문을 닫고 있기도 한다는데 여덟 살인 아이도 벌써 그런 시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면서, 아직 자기 방이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는 아이가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이의 이런 영역도 존중해줘야 하겠구나 싶으면서 '거리두기'라는 말이 일상이 된 요즘,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떤 것에 거리두기 해야 할까 고민해보게 된다.
# 아이의 질문에 나중에 커서, 몰라도 돼, 하고 넘어가려는 것에 거리두기
첫째는 여덟 살이 되니 질문이 더 많아졌다. 원래도 호기심이 많지만 "왜 그래야 돼요?" "그게 뭔데요?"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얼마 전 책 <알라딘>을 읽고 "엄마 꼽추가 뭐예요?"하고 묻길래 "등에 혹이 난 것처럼 뼈가 좀 이상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데... 별로 좋은 말은 아니야"라고 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하원 하는 길에 혼자 꼽추라는 단어를 꺼내며 재미있는지 웃기도 했다. 아이에게는 생소한 단어인 데다가 발음이 신기했나 보다 했지만 좋은 말은 아니기에(사실 나도 어감이 안 좋은 단어라고 생각했지 왜 안 좋은 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꼽추' 단어를 다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엄마, 화살표 하고 곱사등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래? 그럼 곱사등이가 뭔지 한번 찾아볼래" 했다.
"등뼈가 굽고 등에 혹 같은 뼈가 나온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아... 이제 알겠다"
그렇구나.. 그런데 어쨌든 안 좋은 말이니까 쓰지 말라고만 하고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를 재우고 다시 찾아보니 꼽추는 척추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었고 장애 혐오와 관련된 용어를 정리해놓은 포스팅도 찾게 되었다.
단순히 그냥 외모에 대한 말이니까, 별로 좋지 않은 말이니까 하고 얼버무렸었는데 제대로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포스팅을 프린트해서 아이에게 보여 주었다.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은 왜 쓰면 안 돼요?"라고 아이가 물었을 때도 정확히 대답해주지 못했는데 그 포스팅에 관련 용어 설명도 있어서 아이에게 다시 이야기해주었다."엄마 혐오가 뭐예요?"라는 질문에는 "혐오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그냥 미워하고 싫어하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가끔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혐오하는 말을 생각 없이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사람에게는 참 상처가 되겠지? 재미로 썼다는 말도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하는 설명도 함께.
박혜란 선생님이 아이들을 키울 때 애들 대하듯이 아니라 어른을 대하듯 질문을 들어주고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이적 씨는 어머니의 이 일화를 떠올리며 그때 어머니가 내가 잘 모르는 용어도 섞어 가면서 열심히 대답해주셨을 때 사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왠지 어른 대하듯 진지하게 말해주는 것에 뿌듯했던 것 같다고) 생각해보면 그동안 아이의 질문을 건성으로 들었던 적도 많았고, 대답도 그냥 아이가 알 만한 수준으로 하거나 모르면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 의식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아이의 질문에도 그냥 안 좋으니까 쓰지 마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에 진심으로 답해주고 그걸 계기로 또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아이에게도 참 귀한 시간일 텐데. 아이들 스스로도 존중받는다는 생각도 할 것이고. 바빠서 대답해주지 못할 때는 나중에라도 "엄마가 그때 물어본 거 찾아봤는데..." 하고 설명해줘야겠다. "엄마는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 그렇게 궁금해하고 질문한다는 게 참 멋지다!" 칭찬도 해줘야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질문하고 궁금해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갔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서 질문을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에게, 세상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아이의 질문을 건너뛰기 하려 했던 태도와 거리두기 해야겠다.
# 아이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마음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와 거리두기
둘째는 보통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뒤 오빠와 함께 곧장 놀이터에 가서 2시간 정도 뛰어논다. 어린이집에서도 활동이나 놀이 시간이 많은 편이고, 바깥에서도 신나게 놀았음에도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눈물부터 보인다. "얼마 안 놀았는데... 더 놀고 싶은데"하면서. 요즘은 해가 빨리 져서 어둑해지고 난 뒤에도 한참 기다려주는데도 집에 그냥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다. 6시가 넘어 어둑해지고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 둘째의 울음소리는 더 크게만 들린다. 심지어 주말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바깥에서 놀 때도 있는데 집에 들어가자는 소리에 "시간이 너무 빨리 가..." 하며 훌쩍거렸다.
그 정도면 실컷 놀았잖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 말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줄 수 없다는 걸 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아이가 짜증을 내고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내 마음에도 화가 나서 이제 그만 울라고, 내일 또 놀 수 있는데 왜 맨날 우냐고 다그쳤을지 모르겠다. 이제 내 마음도 아주 조금은 성숙했는지 아이의 마음을 그냥 지켜보려고 노력 중이다. "집에 갈 때마다 계속 이렇게 울면 밖에서 안 놀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는 날도 있지만.
"그러게...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갈까"라는 말을 옆에서 해주며 아이의 등을 만져준다. 그리고 그렇게 속상해하고 울면서 집에 들어간 아이는 어느 날은 한참 울다가 씻으러 들어가기도 하고, 곧 마음을 추스를 때도 많다. 손을 씻고 장난감을 꺼내 다시 기분 좋게 놀이에 빠지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기분 좋게 놀았는데 집에 가면서 그렇게 매번 우니까.. 언니들, 오빠들이랑 헤어질 때 울지 않고 들어가면 어떨까?"하고. 나의 말을 들어주던 아니던 중요한 건 아이가 울면서도 시간이 되면 집에 들어가는 행동이다. 속상하고 아쉽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건 아이의 마음이니 내가 그 마음까지는 탓하고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걸 인정해야지.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해주되 행동은 통제하라'는 훈육의 원칙을 많이 들었지만 참 쉽지 않다. 아이의 마음에 자꾸 감정 이입이 될 때도 많다. 엄마가 책상을 정리하라니까 정리는 하는데 온갖 짜증을 낼 때나, 얼굴에 불만이 한가득일 때, 아이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할 때는 나도 덩달아 불만이 생기고 화가 난다. "좀 기분 좋게 해 주면 안 돼?"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고 그렇게 짜증이고 울상이야?" 한 마디를 결국 던지게 되는 날도 많다.
"마음의 주인은 나이고 부모가 아이의 감정, 마음까지는 통제할 수 없어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아이들의 부정적인 감정에 이입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 마음을 바꾸고 싶은 바람으로부터 거리를 둬야겠다.
# 아이들이 내 뜻대로만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과 거리두기
며칠 전에 밥을 먹다가 알라딘 책을 본 아이들과 램프의 요정 지니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먼저 "아빠는 지니가 있다면 이런 소원을 빌고 싶어"하고는 세 가지 소원을 이야기했고 아이들도 덩달아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등을 떠올리며 소원을 말했다. "엄마도 소원을 생각해봐야겠다"하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맞다 맞다! 엄마 소원 뭔지 알겠다" 하더니 "나랑 소니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잘하는 거잖아요!" 하고 말한다.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건 램프 요정이 아니어도 너희들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 같은데~"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줄 때 내가 싫은 티를 팍팍 냈었구나 싶어 뜨끔했다. 첫째가 집에 오면 엄마의 계획대로 먼저 숙제하고 과제부터 했으면 좋겠고 밖에서도 엄마가 이야기하면 잘 따라주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과 엄마 말 잘 듣는 아이 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상충된다. '착하다는 게 뭘까..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어린이라는 세계 p32)'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음에도 아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화가 차오를 때도 많다. 아이에게 필요한 규칙과 통제해야 할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럴 때도 무작정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가 아니라 규칙과 통제의 타당성을 알려주고 아이의 생각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걸 느낀다. 참 이상적이고 늘 어렵지만 그럼에도 조금씩이라도 거리두기 해봐야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