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서른한번 째 이야기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한 지적이나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줬으면 하는 요구, 부탁은 부모에게는 일상이다. "학교 갈 시간 다 됐으니까 얼른 옷 입자"에서부터 시작해 "동생이 자기가 하는 말 자꾸 따라 해서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하니까 엄마한테 이야기해달라고 하잖아. 다른 사람이 싫다는 행동은 안 하는 게 좋겠지?" 등등. 며칠 전에 나의 지적에 아이는 "알았어요"하면서 멈추긴 했는데 그 대답에 짜증이 잔뜩 담겨 있었다.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예전에 어떤 방송을 보고 다짐한 바가 있어 참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 방송 중에 아이의 문제 행동을 부모가 지적했을 때 아이의 태도나 말투가 좋지 않더라도 아이가 일단 문제 행동을 멈추면 거기서 훈육을 중단해야 한다는 오은영 박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반성했더랬다.
사실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바람이 컸었기에 나도 아이의 말투, 태도에 대해 지적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자꾸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진짜 훈육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나 잊어버리기도 하고, 가끔은 아이가 문제 행동을 고쳤음에도 나의 계속된 지적에 아이도 내 마음도 상한 적도 있었다. 아이의 말투나 태도로 또다시 훈육한다면 훈육은 끝이 나지 않는다는 말씀에 공감하며 '나도 이런 부분은 주의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그 후로 몇 번 아이의 대답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넘어갔다. 다행히 훈육은 깔끔하게 종료되었지만 내 마음은 깔끔하지 않았고 뭔가 찜찜했다. '이게 맞는 걸까? 그래도 아이 말투를 꼬투리 잡고 계속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런데 내 마음은? 아이에게 너의 이러한 태도에 엄마 마음이 좀 안 좋다고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학교 갔다 와서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아이에게 "물통이랑 수저통 싱크대에 담가놓고 가방 좀 치우자" 이야기했더니 "알았어요!" 짜증을 내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는 건 좋은데 네가 그렇게 짜증을 내며 대답하니까 엄마도 기분이 안 좋아. 좀 좋게 말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아.. 알겠어요 엄마"하고는 계속 정리를 했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감정을 항상 먼저 존중해주고 헤아려주라는 글들을 보며 밑줄을 그으면서도 그게 어디 쉽나? 싶을 때가 많았다. 아이의 감정만큼 엄마의 감정도 중요한데 엄마의 감정이 존중받는 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한 블로거가 '부모님이 힘든 내색 없이 키워주신 덕분에 위안을 받고 든든한 자존감을 얻었다'는 글을 보며 힘든 티를 냈던 스스로를 반성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육아가 힘들어도 아이들에게 내색하지 말자고, 너희가 잘 커줘서 엄마는 그저 고맙다고 말을 하리라 다짐도 했었다.
'그러게.. 엄마는, 아빠는 나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하시는구나 생각하면 아이들이 괜히 미안해할 거고, 나는 짐만 되는 존재인가 봐 생각하면 어떡해... 안되지 안되지..'
그런데 "너희 키우며 하나도 안 힘들었다~"하는 뻔한 거짓말을 하기도 전에 나의 마음을 안 들키게 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엄마가 너희 어릴 때 잠도 못 자고... 2시간 자고 수유하고.." 생색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도 힘들 때가 있어. 너희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어" 솔직한 내 마음을, 엄마의 상황을 아이에게도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나쁜 감정, 변덕스러운 마음을 다 포용할 부모가 못된다면 꾹꾹 담아놓다가 터지는 것보다 차라리 아이와 이런 감정을 공유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엄마는 너희를 키우면서 기쁠 때 행복할 때가 더 많으니까 힘을 내게 돼" 나의 진심을 함께 전한다면 엄마의 다양한 감정을 좀 더 이해해주지 않으려나.
아이를 키우며 부모는, 특히 엄마는 '미안함'이 기본값이기 마련이다.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미안함, 아이가 부모에게 서운해하면 혹시 내가 상처를 줬나 자책감, 어른인 내가 더 참고 이해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 그리고 그러면서 더 잘해보려고 애쓴다. 아이의 감정 알아채고 수용하기 과정을 몇 번이나 곱씹기도 하고, 존중하며 훈육하는 법을 되새기고 부모 안의 내면 아이를 돌아보라는 육아서에 밑줄을 친다. 육아를 둘러싼 환경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 여전히 많고, 특히 요즘은 코로나로 인한 고립감에 허우적대는 시간이 많은데도 엄마는 늘 성숙한 어른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겁다.
얼마 전 <안녕, 내 첫사랑> 책을 읽다가 한 구절에서 잠시 멈췄다. "어떤 만남이든 한쪽이 희생하는 만남은 건강한 게 아니야. 오래가지도 못하고. 너 계속 데이트 비용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 문장이 자꾸 '너 아이에게 늘 좋은 감정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로 읽힌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한쪽의 감정만 희생하는 건 오래가야 할 관계를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약한 아이들의 감정과 아이의 상황을 먼저 더 많이 고려해야 하면서도 부모의 감정을 아이와 주고받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다. 아이의 말투보다 행동 변화에 집중하는 명료한 훈육, 아이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여러 방법들도 필요하지만 엄마의 감정도 소중하고 존중받고 싶다는 걸 아이도 알았으면 좋겠다. 미안함은 거두고 엄마도 미성숙할 때가 많다는 걸 솔직하게 털어놓자고 다짐한다. 아직은 사랑에 서툰 너와 네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서로 미안해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고마워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지.
* 이 글을 쓴 날, 아파트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본 책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부모는 참고 참고 또 참아야 아이가 아프지 않습니다. 상한 속을 견딜 수 없어 소리쳐버리면 잠시 후련하겠지만 아이에게 아픔이 옮겨갑니다. 육아를 해내는 부모는 모두 위대한 희생자입니다. 가슴에 멍이 들지 않은 어머니는 세상에 없습니다-
아이를 다 키운 뒤 뒤늦게 후회하고 반성하는 고백을 담은 책의 어느 구절이었다. 가슴에 멍이 들어도, 감정을 희생한다 해도 아이를 위해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그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어쩌면 나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 내가 참아야 했는데, 아이에게 상처 준 내 모습이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한없이 작아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에게 미안한 부모,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쓱싹쓱싹 문지르고 어느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존중하는 건강한 관계를 그려본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