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교육 서른 두 번째 이야기
"친구 일에 간섭하지 않아요. 자기 일에만 집중해요"
아이가 매일 학교에서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내용을 알림장에 적어 오는데 어느 날은 공책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친구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을 '친구 일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일까 싶어 슬쩍 아이에게 물었다.
"친구 일에 간섭하는 건 안 좋지만 관심 가지는 건 괜찮지 않아?"
"맞아요. 친구 일에 관심 갖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간섭은 하지 말래요"
"그런데 간섭하는 거랑 관심 가지는 게 어떻게 다른데?"
궁금해서 물었다.
"엄마 봐봐요. 간섭하는 건 이런 거예요. 야! 너 왜 이렇게 만들었어! 야! 너 왜 이상하게 걸어? 이런 거.
그리고 관심은 음... 와! 너 잘 만들었다! 너 색종이 접기 잘하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기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가, 아이가 간섭과 관심의 차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구나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간섭과 관심 이 두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머물렀다. 혹시 나는 관심을 가장한 간섭을 한 적이 없었나 하고. 얼마 전에 보았던 책의 한 구절도 생각이 났다.
외국에 여행을 간 글쓴이는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은 한국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서로에게 굉장히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서로 무엇을 입었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신체를 불필요하게 훑어보거나, 얼굴을 빤히 바라보거나,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건넨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신기한 지점은 그러던 어느 날 글쓴이가 길을 걷다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자 평소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던 행인들이 순간 사방에서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었다는 부분이다.
<다정한 무관심 p17>
책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관심을 주고받는 문화'에 익숙하다. 관심을 가진다는 건 상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여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이러한 관심이 반가울까? 괜찮을까. 사람을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관심을 보여야 할까 고민될 때가 많았다. 너무 무관심하면 정이 없어 보일까 싶기도 하고, 괜히 이것저것 이야기했다가 상대가 부담을 느끼면 어쩌지 해서 했던 말을 후회하기도 하고.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행동한 것이 간섭으로 여겨져 불편한 적도 있었다.
예전에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집에만 있던 나에게 남편은 퇴근하면 늘 똑같은 걸 물었다.
"아이들은 별일 없었어?"
"오늘 하루 뭐하고 보냈어?"
처음에는 그 관심이 고마웠지만, 어느 날 남편의 말은 간섭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오늘 이러이러했는데 아이들이랑 당신은 어떻게 지냈나 궁금했어"라고 말했다면 좀 더 나았을까. 어쩌면 그날 내 마음 상태가 관심을 관심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관심이 간섭으로 둔갑할 수도 있으니 간섭과 관심은 물과 기름처럼 정말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참 어렵다. 그래도 '관심은 상대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 간섭은 상대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라는 차이를 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간섭으로 보이는 대사는 나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상황을 물어보는 것이고
관심으로 보이는 대사는 나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인터넷에서 관심과 간섭의 화법 차이에 대한 글을 보면서 제대로 된 소통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된다. 역시나 대화는 어렵지만,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니 계속 배우고 깨달아가야 하나보다.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에게 '간섭이 아닌 관심'을 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엄마, 그건 간섭이에요!"라고 방문도 닫고 마음도 닫지 않게 관심과 간섭, 다정한 무관심에 대해서 공부 좀 해야겠다. 사춘기 아이들과 지낼 때는 '관심은 의논, 간섭은 내 생각을 주입하는 것' 이걸 늘 기억해야 한다는 육아 선배의 말도 잊지 말아야겠다. 아니 사춘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지금부터라도.
각자를 존중하고 거리를 지키며 적당히 무관심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다정한 무관심. 참 어렵지만 함께하고 싶은,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은 삶의 태도이다.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지키며, 간섭과 참견을 하지 않는,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다정한 무관심'이 아닐까. <다정한 무관심, p18>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