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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에필로그_얘들아, 오늘은 뭐 할까?

최소의 비용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올해 여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언니네 집에서 임시로 고양이들을 봐주며 아이들과 일주일을 보냈다. 그동안 언니집과 주변에서만 머물렀던 대구, 자동차를 타고만 돌아다녔던 대구를 새롭게 발견한 기분이었다. 서울도 그랬지만 언니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괜찮은 시설이 참 많았다. 물론 조금만 더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더 정보를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적은 비용 또는 무료로 하루하루 알차게 보냈다.


입석과 좌석을 번갈아가며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가는 길이 우리 여행의 시작이었다. 동대구역에서 언니집까지 택시 요금 15000원 정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덕분에 1만 원을 절약했고, 아이들은 낯선 동네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에게 대중교통 이용은 하나의 놀이였다. 아이들도 짐 하나씩 들고, 버스 안에 자리가 없을 땐 서서 가기도 해야 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 또한 사회를 배우는 방법이니까. 


언니집에 머물면서도 버스와 지상철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말 그대로 대중교통 여행. 직접 카드도 찍어볼 수 있고(초반에는 어디 찍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아이들) 초등학생 요금이 보통 400원~500원 정도이니 비용도 부담 없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려주면 아이들이 버스 안 노선도를 살펴보기도 하고 안내 방송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작은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다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버스가 달릴 때 움직이거나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도 배운다. 노약자석이 무엇인지, 임산부석이 무언인지 이제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은 물놀이하느라 옷이 좀 젖어있던 아이와 지하철을 탔다가 너무 추워해서 내려서 택시를 갈아탔다. 미터기에 요금이 만원 정도 찍혔는데 버스 요금을 대략 알고 있으니 택시 요금을 보고는 첫째가 놀란다. "엄마 너무 많이 나와서 어떡해요~"  "괜찮아. 엄마 돈 있어~ 가끔 필요할 땐 택시도 타고 하는 거지"라고 말을 했는데 아이는 아마 좀 힘들어도 버스를 타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걸 배웠을 것이다. 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지구에도 좋다는 것도. 


언니집에서 저녁밥을 일찍 먹고 근처 저수지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기도 했는데 거위도 구경하고 물고기도 구경하고. 공원 안에 집라인도 타고, 조명이 켜진 야경도 감상하며 집으로 걸어왔다. 자주가 아니라 한 번씩이라도 이런 산책은 여느 여행 부럽지 않다. 


며칠 만에 이모가 사는 대구가 좋아졌다는 아이. 버스도 자주 타고 그냥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을 때, 기꺼이 엄마가 가자는 곳을 따라나설 때(언젠가는 엄마 혼자 가세요...라고 할 지도) 큰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열심히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 전에는 늘 어디론가 멀리 떠날 궁리를 했었다. 먼 곳으로 떠나 멋진 곳에 머물고, 유명한 것들을 보아야만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을 가고 산에 가고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도 여행에 대한 갈증이 조금 해소되었다. 어쩌면, 젊은 날 발에 땀이 날 만큼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서 여행에 대한 욕망이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꼭 유명하고 거창한 곳을 가지 않더라도 세상을 탐험하고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최인철 교수님은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 병기'를 몇 가지 소개하는데 그중에서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는 항목도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것이 많고(물질적인 개념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기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라면 나중에 커서도 건강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잘 끌어안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런 믿음에도 스스로 위축되는 순간이 있다. 자꾸 다른 부모들이 해주는 것들을 의식하고 비교하게 되고, 내가 이렇게 내 소신대로 해도 아이들이 잘 자랄까 걱정이 될 때. 그럴 때는 이 말을 떠올린다. 


"아이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려고 낳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 중에서>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지금 아이들의 마음과 모습을 더 바라보자고 다독인다. 아이들이 놀이에 흥미를 잃지 않을 때까지, 바깥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까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설 것이다. 최소의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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