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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여유로운 시간, 무언가와 사랑에 빠질 기회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궁금하다면.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찾고 싶은데 어려워요"


어느 날, 첫째 친구 어머니가 나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부터 이것저것 배우고 학원 가느라 더 바빠진 아이의 재능 찾기는 쉽지 않으리라. 아마 앞으로도 더 어려울 수도 있고, 또 어느 날 부모도 몰랐던 재능과 호기심을 아이가 갑자기 드러낼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의 무기력증에 대해 걱정하는 말들도 많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 생기 잃은 모습. 왠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학교, 학원을 오가며 틈이 없는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곤충을 아주 좋아했다. 4살 때쯤 집 앞 공원에 나가 개미가 줄지어가는 걸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매일매일 보는 개미인데도 아이 눈에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주변 아이들을 보면 곤충뿐만 아니라 공룡, 해양생물, 자동차, 공주, 동물 등 어릴 때 전문 분야가 꼭 하나씩은 있었다. 아이들마다 관심을 두는 게 다르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공룡 이름이나 자동차 이름을 달달 외는 아이들을 보면 입을 떡 벌어졌다. 대단하다 너네들, 아줌마는 절대 못하겠는데.  


어릴 땐 주어지는 시간이 무척 많다. 종일 공룡 책을 보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곤충이나 자동차를 한참 구경하기도 하고. 관심을 오롯이 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어딘가에 푹 빠지기도 쉬운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고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온전히 내가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들고 여유도 사라진다. 초등 중학년이나 고학년만 되어도 어른들보다 더 바쁜 아이들이다. 멍 때릴 시간도, 무언가에 집중할 시간도 귀하다.


첫째는 10살인 지금도 곤충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한다. 첫째가 1학년이었을 땐 학교 수업과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 수업을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덕분에 자기만의 시간이 많았다. 학교 마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와서 뒹굴뒹굴하기도 하고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렸다. 갑자기 색종이와 돋보기를 들고나가 종이 태우기에 집중하기도 했고, 집에서 낙하산을 만들거나 실험책을 보고 이것저것 실험해보기도 했다. 


색종이 돋보기로 태우기 실험.


색종이 태운 날 그림일기. (엄마는 김 그린 줄 알았잖아~)


2학년 때는 고래와 상어에 푹 빠져 관련된 책만 보고 고래, 상어 그림을 매일 몇 마리씩 그렸었다. 한 때는 거북선에 꽂혀서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무기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거북선과 사랑에 빠졌다. 집 곳곳에는 거북선 그림이 가득했다. 가끔은 마술에 꽂혀 마술 보여준다고 난리, 착시 현상에 관심이 생겨 착시 현상 그림을 온종일 그릴 때도 있었다. 요즘은 다시 실험에 빠져 동전에 물방울이 몇 번이나 채워지는지 해보기도 하고, 뜨거운 물 차가운 물을 약병에 각각 넣고 합치고는 "엄마!! 봐봐요! 안 섞여요!" 호들갑을 떨 때도 있다. 


아이는 넉넉한 시간 덕분에 그림과 곤충과 각종 실험, 그리고 다양한 것들에 푹 빠져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꾸준히 겪다 보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스스로 찾는 기회도 많아진다. 일찍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 키워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으니. 시간과 여유가 주어지는 한 무언가와 사랑에 빠질 확률은 더 높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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