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맞닥뜨릴 결핍을 어떻게 바라볼까.
요즘엔 아이들에게 미리미리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들이 참 많다. 그중 하나가 경제 교육이다. 금융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 올바르게 저축하고 투자하는 방법을 강조하는 책도 많고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경제 교육을 시키는지에 관한 영상, 콘텐츠도 넘쳐난다. 자꾸만 아이에게 경제 교육을 빨리 시켜줘야 할 것 같고, 투자와 수익 구조를 배울 기회도 줘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양육자들에게 또 하나의 책임을 안겨준다.
아직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물건을 살 때 여러 번 생각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과 필요하다고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이들과 한 번씩 장난감, 책 정리를 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나눔 하거나 중고로 팔기도 하는데 아이들도 그 과정을 통해서 조금은 느끼는 것 같다.
"샀는데 거의 쓰지도 않았네. 필요한 사람 줘야겠다."
"엄마, 이거 왜 샀을까요?"
예전에 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친구가 하교 길에 문방구에서 산 장난감을 보고는 "우리 엄마는 사달라는 거 다 안 사준다~"라는 말을 크게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소소한 거는 가끔 사주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아이들이 어릴 때 마트에 가더라도 갖고 싶은 물건은 생일이나 특별한 날 가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도 그런 편인데 그래서 하교할 때 친구들이 문방구에 들러 장난감을 살 때면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볼 때도 있다.
예전에는 다 같이 어렵고 힘든 시절이라 안 사주고, 원하는 걸 안 해줘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그런 것들로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에 웬만하면 친구들이 갖고 있는 걸 사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많은 친구들이 갖고 있는데 없으면 너무 스트레스받으니까 사줘야 하는 것인가, 고민이 많아진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월급이 많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은 정확한 지금의 직장에 계속 다니기로 했고, 나는 '수입이 없는' 쪽을 선택했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아이들은 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활동이나 체험은 쉽게 하기 힘들 것이며 사교육 역시 꼭 필요한 것 한두 가지 정도만 선택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채워줄 수는 없는 결핍이다.
여행을 간다던지, 공연을 본다든지 아이들과 하는 체험에는 어느 정도 지갑을 열지만(이 마저도 절약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물질적인 것에는 제한을 둔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를 좋아하지만 일 년에 몇 번 밖에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갖고 싶더라도 너무 비싼 것은 사 줄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
"다른 친구들 다 갖고 있는 걸 안 사주면 아이가 너무 속상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만 스마트폰이 없어서 안쓰러울 수 있지만 우리 아이만 없는 것은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아이가 이것저것 다 배우고 싶어 하는데 어릴 때 안 해주면 나중에 너무 미안할 것 같아요"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간절히 배우고 싶다면 꼭 학원을 가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도 있다고 알려준다. 그 결핍을 안쓰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는 대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아이가 다른 방식으로 누리게 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고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없지만 그 시간에 아이가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장난감을 마음껏 살 수 없지만 대체할 만한 다른 놀이를 찾을 수 있게 바깥으로,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가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이는 조금씩 느끼지 않을까. 지금 유일하게 다니는 합기도를 아이들이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충분히 즐기는 것도.
'결핍'에 대해 생각을 하니 또 문득 아이들과의 놀이 시간도 떠오른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신나게 같이 놀아주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미안했다. 그게 아이들에게 결핍이 될까 걱정도 돼서 어릴 때는 아이를 데리고 무조건 놀이터로, 공원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기술이 출중한 남편에게 "오늘도 둘이 어찌나 잘 놀던지..." 하는 이야기를 하면 가끔 이렇게 얘기를 하곤 했다. "당신이 그냥 앉아서 책보거나, 아이들이랑 잘 안 놀아서 둘이서 노는 것 아니냐"라고.
"아니거든! 둘이 잘 노니까 나도 책 보고 지켜보는 거거든! 그리고 집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이들이랑 같이 놀기도 힘들어" 반박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었다. 아이들이 아빠와 있을 때는 "같이 놀아요. 같이 놀자!" 하면서 아빠를 가만두지 않지만, 나와 있을 때 "엄마, 같이 놀자"는 말을 잘 안 하는 걸 보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던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도 있는데. 그 결핍으로 인해 아이들은 혼자서, 둘이서 이런저런 놀이를 생각하고 놀 거리를 만들어낸다. 나는 커다란 액션을 취하지는 못하고 실감 나게 역할극은 못하지만 집이 아이들의 놀이로, 호기심으로 난장판이 되는 것에는 관대해지기로 했다. 주섬주섬 클레이나 재료를 꺼내면 아이들도 옆에 와서 하다가 더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 내곤 했다. 아이의 심심함을 꼭 채워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늘 누군가가 재미있게 놀아주거나 항상 재미있는 환경이 아닐 때도 있어야 아이가 혼자 놀 거리를 찾고 집에서도 혼자 노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위안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늘 모든 것을 충족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 어른들도 경험했듯이. 경제적인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또 어디서든 크고 작은 결핍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족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는 그 결핍을 다른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부족함이 아이들에게 삶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게, 결핍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행해야 할 삶의 반려임을 조금씩 가르쳐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