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반디 Oct 19. 2023

내 선택이 어떤 장점을 가져올까

공부 더 시킬 걸, 더 놀게 할 걸, 확실하지 않은 미래 앞에서.

예전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며 둘째의 친구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위치한 피아노 학원에 여기 사는 아이들도 많이 다니더라는 얘기가 멀리서 들려 대화 주제는 아이들이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는 것으로 흘러갔다.  


"저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꼬박 피아노를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좀 아까운 것 같아요"

친구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피아노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던 나는 좀 부러웠다. 


"그래도 가끔 피아노 치고 싶을 때나 어디에 피아노가 있으면 연주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던데요"

"친정에 피아노가 있어도 가끔 놀러 가면 아이나 피아노 치면서 놀지 저는 거의 안치게 되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악보를 보고 연주하기까지 엄청 힘들었던 기억도 나고 그때는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 하는 건 줄 알고 다니긴 했는데.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걸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예전에 친구 중 한 명은 악기 하나를 배워놓길 참 잘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돼서 배웠으면 더 속도도 더디었을 것 같다고. 또 한동안 안치다가 어른이 된 뒤 다시 조금만 배워도 감이 오니까 괜찮은 취미를 갖게 되어 참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똑같이 배우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기억된다. 


학창 시절 때 제일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지, 혹은 지금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부모님, 선생님 말씀 안 듣고 공부를 안 했던 게 많이 후회된다. 학생들아 공부 열심히 하고 그리고 잘해라. 그래야 나중에 선택지가 훨씬 많아질 거야".  한편으로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부 말고 다른 걸 많이 해보고 경험해 볼 걸 후회가 된다. 학생들아,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절대로 아니야. 공부보다 중요한 게 많다는 걸 기억해."


이런 상반된 반응은 아이를 좀 더 키운 부모들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아이를 마음껏 놀도록 한 것이 후회된다.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일찍부터 학원도 보내고, 공부 습관을 잡아줄 걸 그랬다. 둘째라도 타이트하게 시키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이런 글을 볼 때면 나의 미래 모습일까 하며 남 일 같지 않고, 걱정도 되고 그래도 놀면서 또 얻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슬쩍 참견하고 싶기도 하다.  "교육을 많이 시킨다는 유치원에 일부러 보냈는데 아이가 영어에 거부감이 심해졌다. 공부하는 것 자체를 너무 싫어해서 후회된다. 남들처럼 시키려고 했던 게 욕심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무엇이든 선택은 언제나 어렵고 나중에 어떤 식의 후회와 아쉬움은 남는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어도 얻는 게 있음을 우리도 살면서 자주 느낀다. 만약 아이가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릴 때 뛰어노는 것만 너무 강조했나 후회하기도 하겠지. 미술 학원 다녀서 그림 잘 그리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들을 볼 때면, 성적이 좋아 부모와 아이가 동시에 칭찬받는 상황을 보면 부러움과 후회가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해질지 모른다. 누구 말대로 아이가 커서도 여전히 '잘 놀기만 하는' 걱정스러운 상황에 부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아이가 밝게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 감사할 수도 있다.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을 발견하거나 즐겁게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에 나의 소신이 틀리지 않았어 안도할 수도. 아이의 미래를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선택을 믿고 그 선택이 가져오는 장점을 바라보는 일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며 친한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언니집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어쩜 그렇게 잘 놀아요?" 

"놀이터에서 매일 몇 시간씩 놀면 일단 아는 친구들이 많아져. 아무도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혼자 노는 것에도 요령이 생겨" 웃으며 대답했는데 "언니, 언니 혼을 놀이터에 갈아 넣은 결과다"라는 말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동생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공부가 아닌 아이들이 노는 것에 혼을 쏟은 '극성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이라면, 이것저것 챙겨 떠나고 보는, 모래 놀이하는 동안 몇 시간을 앉아있는 데는 이골이 난 그런 엄마. 나의 선택이 좋은 점도 가져오겠지만 아쉬움과 후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거리낌 없이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아이를 볼 때면 다행스럽다가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제일 쉬운 수학 학습지라며 권해준 교재를 첫째가 풀며 어렵다고 할 땐 이런 게 공부 격차구나 실감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최선을 다하는 부모들 역시 고민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안도와 불안 사이를 몇 번이고 오고 간다.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 들어간 뒤에도 육아는 자꾸만 스트레스 유발자가 되어간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하는 선택이 아이에게 어떤 장점을 가져다 줄지, 나는 무엇을 '얻게' 될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좀 더 스트레스에서 비껴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나중에 아이에게 공부를 안 시켜서 혹은 아이에게 공부를 너무 시켜서 후회하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즐겁게 누리지 못해서' 가장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이전 10화 불편해도 인정해야 하는 교육 격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