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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불편해도 인정해야 하는 교육 격차

학교 가는 일이 싫지만 않아도 충분해.

"그렇게 학원도 안 보내고, 학습지도 안 시키고... 불안하지 않아요?"

"공부를 잘 못해도 긍정적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면 커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좋은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공부를 못하면 자존감이 확 떨어지는 구조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들 공부 어떻게든 시키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그런데..."


이런 대화가 오고 갈 때 나는 현실에 맞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렇게 실천해 보자는 나의 말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현실은 성적의 좋고 나쁨이 성실함의 잣대가 되고, 공부 못하는 아이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더 너그러울 때가 많다.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집에서는 "괜찮아, 공부가 다는 아니야.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주더라도 아이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공부로 인해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아프고 슬프지만.


아이가 공부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학교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지 않도록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평균 또는 그 이상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지를. 게다가 요즘은 선행학습을 하는 경우도 많고 대부분의 학습이 어릴 때부터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학교 교육 과정에 맞게 교육을 해도 아이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의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질까 겁이 난다. 그래서 소신을 갖고 있다가도 어쩔 수 없이 치열한 레이스에 발을 들여놓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남들에게 성적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단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번 '공부 못하는 아이'로 찍히면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많다. 인격을 무시당하거나, 성적과 아무 상관없는 일에서 오해를 사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공부, 성적이라는 슬픈 잣대를 통해 세상의 차별에 일찍부터 노출되어 버린다"  <공부 못하는 아이 중에서>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달리 현재 중학교 때까지는 등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점수로 평가하지 않고, 등수를 알려주지 않는 시스템이 아이들의 학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 모두의 성적과 등수를 적은 종이를 벽에 붙여놓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성적표에 적힌 숫자가 말 그대로 숫자일 뿐이라면, 아이들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로 구분하는 잣대, 공부 잘하는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직은 초등 3학년, 초등 1학년인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 친구들 앞에서 부끄럽다거나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교과 과정이 어려워지고 선행학습을 하거나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과 학습 수준 차이가 느껴질 때 좌절을 느끼는 순간도 오겠지. 사교육을 열심히 시켜줄 여력은 안되고, 그렇다고 공부 때문에 너무 좌절하는 것은 걱정되고, 늘 이런 딜레마 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에서 명문대학교로 꼽히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진학률에서 고소득층의 비율이 높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책 <프로페셔널 스튜던트>에 의하면 해가 갈수록 명문대 입학생들 중에서 고소득 부모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2020년 SKY 입학생의 10 분위(부모의 월소득 금액에 따라 10개 구간으로 나눴을 때 가장 높은 구간) 비율이 55.1%라고 한다. 특히 의대와 로스쿨의 경우는 그 비율이 훨씬 늘어난다고.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으면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더 인정받는 현실에서 무엇이 공정한 평가 방법인지를 논하는 것은 아주 복잡한 문제다.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자에 대한 존중 부족,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자식만큼은 커서 고생하지 않고 신분적인 차별을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뒤섞여 교육열은 식을 줄 모른다. 아이를 낳기도 전에 좌절감부터 느껴야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사교육을 시킬 수 있다. 이제는 훨씬 더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시대다. 예전에 집 근처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길래 아이들과 가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전문 선생님과 같이 전시를 보고 연계된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꽤 괜찮아 보였다. 1시간에 4만 원이라는 비용이 부담되어 신청은 못했지만. 옛날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가 유행어에 사람들이 웃으면서도 씁쓸해했었는데. 돈 있는 사람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그래서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교육 격차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 격차를 인정하고 나는 그만큼은 해 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는 더 넓게 멀리 봐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자녀들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 입시가 실력을 가늠하기보다 시험 잘 치는 기술을 가늠하는 성격이 되다 보니, 시험 기술을 비싼 사교육으로 잘 배운 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대학 가는 데만 쓰일 뿐 대학 나와서 사회생활에 쓰일 기술이자 실력과는 무관하다. 그러니 흙수저는 더더욱 시험 기술이 아니라, 실력 자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승산 있는 게임이다. 시험 기술에선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p47>


아이들이 긍정적 공부 정서를 가지고 학교 가는 일이 싫지만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 공부 정서라고 하면 "공부가 재미있어요"라는 건 줄 알고 좀 부담스러웠는데 어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냥저냥 할만하다 생각하면 긍정적 공부 정서를 가진 거라고 하셔서 용기가 생겼다. "아, 너무 싫어. 진짜 싫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이렇게만 안 해도, 억지로 앉아있더라도 하다 보면 또 할만하네 싶으면 되는 거라고.


오히려 초등 저학년 때부터(아, 요즘은 초등 입학하기 전부터인가) 빡빡한 스케줄, 많은 공부량에 힘들어하지 않게 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것을 집에서 한 번씩 복습해 주는 걸로 현행 교과 과정을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게 한다면 학교에서 수업 듣는 것도 많이 힘들지 않겠지 하며 매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복습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학교에서 피곤하지 않게 10시 전에는 자고, 학교 갔다 와서는 신나게 놀기도 하고 자기들 하고 싶었던 것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준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넓게 본다면 배움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고 공부하는 것이 조금은 재미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이들이 학교 가는 걸 무척 재미있어한다.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이 어느 학원을 다녀야 하고, 무슨 레벨테스트를 받고, 어떻게 학원 스케줄을 짜야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학교 다니는 것만큼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게 고민하고 도와주려 할 것이다. 이것이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고.

 

아인슈타인의 말을 늘 떠올려본다.


"사람은 누구나 천재다. 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면 물고기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학교는, 학벌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는 대부분 한 가지 능력, 공부 능력으로 아이들을 판단한다. 10년 넘게 이런 판단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말 스스로가 바보라고,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살지도 모른다. 나부터, 우리 집에서만이라도 그 판단은 틀린 것이라고 계속 알려주는 방법 밖에 없다. 네가 갖고 있는 능력과 열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라고. 아이들 안에 들어있는 열정과 가능성을 믿으며, 그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즐겁게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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