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에서 유학하며 1년 농촌살이.
유학이라고 꼭 해외유학만 있는 건 아니다.(물론 해외에 나가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건축물, 세상을 만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비용 부담이 꽤 크다). 가끔 익숙함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농촌유학'을 추천한다.
첫째가 2학년, 둘째가 7살일 때 농촌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길 바라는 마음도 컸고, "이런 삶도 있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도 농촌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기에 남편과 상의 끝에 전남 구례로 농촌유학을 결정했다.
막상 신청을 하려고 하니 이런저런 고민이 튀어나왔다. 주거할 집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텐데 집 상태는 어떨지,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는 남편, 육아하며 내 감정이 종종 널뛸 때 균형을 잡아주는 남편의 부재는 괜찮을까. 4년째 같은 어린이집을 지금은 어느 때보다 즐겁게 잘 다니고 있는 둘째가 낯선 곳에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아이들이랑 먼저 농촌에 가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첫째는 농사짓는 거 보고 싶었다며, 곤충도 많아서 좋겠다며 "엄마, 신청해 봐요"한다. 둘째는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다며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7살 되면 다른 반 돼서 지금 친구들이랑 많이 헤어질 텐데... 가서 좋은 친구들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는 말에도 눈물이다. '아.. 어쩌지..'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둘째의 마음을 만져주었다.
2021년 1학기부터 시작해 3기째 진행되는 전남 농촌유학의 모집 학교는 마흔여 개였다. 담양, 구례, 곡성, 장성, 해남, 완도 등 지역에 다양했다. 신청서를 쓰기 전날 밤, 학교를 살펴보고, 학교마다 제공되는 숙소를 찾아 장단점을 파악해 보고 실제 농촌유학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블로그도 찾아서 포스팅을 읽어보았다. 학생수가 적은 소학교들이라 희망 학년 및 희망 인원이 쭉 적혀있는데 그것도 고려해야 했다. 다행히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2학년(2022년 예정) 남학생을 모집 중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시골 생활이고 아이들이 친구들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 집보다는 유학 온 가구들이 몇 집 모여있는 환경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세 군데 정도 학교를 골랐고 다음날 먼저 유학을 간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와도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현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종 결정을 하고 희망학교, 농촌유학 신청 동기 등을 작성해 아이 편으로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2022년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1년 동안 아이들과 농촌살이를 했다. 농촌유학을 하면서 아이는 서울에서는 하기 힘든 다양한 체험을 했다. 승마를 비롯해 래프팅,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워터파크와 동물원 체험학습도 갔고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는 공연과 만들기 시간 덕분에 일상이 풍성해졌다. 저녁에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시간은 새로웠고 기억에 남았다. '학교'라는 공간이 더 따뜻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이주비용을 비롯해 매달 서울시와 농촌지역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주거 문제가 해결되어 큰 부담도 없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원 없이 뛰어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니, 이런 제도가 참 감사하다.
아침에 통학 택시를 타러 아이들이 뛰어가면 옆집, 아랫집, 윗집에서 형, 누나, 친구가 가방 메고 나오고 반갑게 인사하고. 봄에는 처음 본 들꽃을 보면서, 여름에는 신나게 수영장과 계곡에서 놀면서, 가을에는 집 앞 나무에서 대추도 따먹고 감도 마음껏 먹고. 그렇게 자연 곁에서, 농촌의 흙냄새를 맡으며 보낸 1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매주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아빠를 내복 차림으로 만나러 가는 길도, 반딧불이 찾아보겠다고 깜깜한 밤 친구들이랑 언덕에 올라갔던 시간도, 농촌 주변을 여행하며 다니던 것도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가끔 아침마다 선생님께서 찻잎을 우리고 차를 마련해 주시면 아이들과 다도 시간을 가졌는데 참 좋다고 했다. "엄마, 오늘은 봉황단총밀란향 마셨어요" 신기한 차 이름을 알려주기도 하고. 가을날, 아이들과 아침 일찍 일어나 안개를 헤치고 올라가서 보았던 지리산 운해도 잊을 수 없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 구름바다를 보고 아이들도 얼마나 탄성을 지르던지. 여러 가족들과 살면서 맛있는 건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정을 아이들은 경험했다. "이것 좀 맛보세요~" 옆집에서 가져다주신 접시에 또 먹을 걸 담아 갖다 주라는 심부름을 아이들은 좋아했는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져 사는 법'을 알아갔기를.
농촌유학을 마무리하고 시골집에서 마지막 밤. 아이들과 불을 끄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다시 유치원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엄마, 다시 여기 오면 친구들이랑 유치원 다닐 수 있는 거야?"
"이제 유치원은 끝났는데. 다른 친구들도 모두 학교 들어가는 거야.."
"친구들 보고 싶을 것 같아..."
"처음 여기 왔을 때 기억나? 서울에 친구들이랑 헤어져서 많이 울었잖아. 근데 여기서 새로운 친구들 만나서 즐거웠지? 서울에 다시 가도 또 좋은 친구들 만나게 될 거야.."
"맞아.. 엄마 헤어지는 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래요. 반쯤 슬픈 거래요.. 그래도 잠깐 갔다가 다시 오면 좋겠다.."
"아빠가 너희랑 너무 같이 있고 싶어 할 텐데... 3학년 때쯤 우리 다시 올까?"
"너무 시간이 오래잖아.. "
"친구들한테 편지도 쓰고 가끔씩 여기 놀러 와서 친구들 만나자~"
울먹이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베개도 축축해졌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 다시 또 서울생활에 적응을 한 아이들은 가끔씩 구례에 내려가 친구들도 만나고 일상에서도 농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한다. 얼마 전에 <마지막 뉴스>라는 그림책에서 농사지을 사람들이 없어 농산물 가격이 치솟았다는 내용에서는 "농촌에서 사는 것도 엄청 좋은데"라며 첫째가 나름의 감상평을 했다. "그러게! 우리 농촌유학해 봐서 알잖아~~?"
제2의 고향 같은 구례. 농촌유학 다녀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