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도서관, 공공놀이터는 육아에 단비.
부모의 재력이 얼마만큼인지, 또 그 재력과 능력에 따라 아이들의 교육격차는 얼마나 벌어지는지를 다루는 기사와 다큐멘터리에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또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사교육 많이 받은 아이들을 어떻게 이겨요...?"라는 학생들의 토로, "아이들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어른들의 고충이 더욱 와닿는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이 다른 이상,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정도는 기울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공정하게 주어지는 것들도 있다.
지난 여름 아이들과 처음으로 동해 바다에 놀러 갔다. 작년에는 구례에서 농촌 유학하며 거의 계곡만 다니다 보니 바다에서 놀아본지도 2년 정도 됐는데 바다가 그리운 아이들의 성화에 "그래, 더 추워지기 전에 가보자~~ 동해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캠핑을 할까 하다가 텐트 걷는 날 비 예보도 있고 해서 캠핑장의 방갈로를 예약했다. 텐트 빼고는 다 가져가야 하지만 2박에 14만 원이면 여름휴가치고는 괜찮은 가격이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캠핑장 앞바다로. 발만 담갔는데도 롤러코스터 타듯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다음 날에는 다른 해변으로 가서 쨍쨍한 햇볕 아래 10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신나게 놀았다. 자연 파도에 몸을 싣고 열심히 모래 구덩이 파고 모래 놀이도 하고. 평상 5만 원은 좀 아까워 가져온 텐트를 치고 생수 2통에 넣어 간 물로 대충 몸만 헹구고 숙소로.
담날에는 설악산이 보이는 계곡으로. 물이 너무 차가워 걸어 다녀보기만 할까 했는데 "엄마 물에 들어가도 돼요?" 몸이 근질근질한 첫째. 결국 사람들도 좀 있고 안전하고 적당한 곳을 찾아 아이는 구명조끼 입고 튜브를 타고 놀았다. 역시나 소리 지르며 신나게 노는 아이.
아이들이 바다에서, 계곡에서 신나게 노는 걸 보며 공짜로 놀이터를 제공해 주는 자연에게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날씨만 허락한다면 마음껏 즐겁게 놀 수 있는 자연. 올여름도 비싼 워터파크에는 가지 못했지만 자연 덕분에 아이들은 신나게, 시원하게 잘 놀고 많이 웃었으니 자연은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둘째와 하교하는 길에 주민센터 1층 작은 도서관에 자주 들린다. 아이에게 작은 도서관은 참새 방앗간이나 다름없다. 아이는 열심히 책을 고르고 자연스럽게 사서 선생님이 앉아계신 책상에 내려놓는다. 여기는 도서관마다 1인 6권을 빌릴 수 있으니 도서관 두 군데만 가도 책을 한가득 빌려올 수 있다. 마침 그림책, 어른책 신간이 가득해 나도 애들 책, 내 책 한가득 빌려왔다. 빌린 책만 따로 꽂아두는 전면 책장을 만들어 자기가 빌려온 책들을 꽂고 읽는다. 책을 사지 않고도 이렇게 좋은 책들을 많이 빌려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최근 도서관 예산 삭감에 대한 기사나 임대료, 임대계약 문제로 도서관이 폐관되는 기사들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어떤가. 제일 부러운 사람 중 하나는 집 바로 근처에 아주 멋진 놀이터가 있는 경우다. 첫째 어린이집 친구 중에 경기도 군포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친분이 생겨 한 번은 그곳에 놀러 갈 기회가 생겼다. 서울 관악산 밑 동네에서 군포까지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식당에서 밥 먹고 놀다가 초막골 생태공원에 가게 되었는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독특한 놀이터, 커다란 놀이터가 2개나 있고 놀이터에는 모두 모래가 깔려있고 바로 옆에 손 씻고 발 씻고 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 모래 놀이하기에도 안성맞춤. 심지어 숲 놀이터와 넓은 잔디까지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첫째가 6살, 둘째가 4살일 때 처음 가게 되었고 놀이터에 홀딱 반했다. 아이들도 종일 놀아도 아쉬워할 만큼 그곳을 좋아했다. 이렇게 아이들 친화적인 놀이터를 발견하면 보물을 발견할 것처럼 마음이 띈다. 매일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가끔 새로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그 뒤로도 주말에 생각나면, 첫째가 10살이 된 지금도 아이들을 데리고 초막골을 종종 찾아간다.
아이들이 한창 바깥에서 놀기 좋아할 때 어디 갈 때면 괜찮은 놀이터가 있나 없나 꼭 찾아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시가와 친정이 있는 경남을 차로 이동할 때도 중간 지점 즈음에 놀이터를 검색한 적이 있다. 5,6시간 차로 이동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차가 막힐 땐 휴게소에서 잠깐 쉬는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충주 탄금공원에 있는 나무숲 놀이터를 알게 되었는데 독특하고 너무 괜찮아 몇 번이고 더 갔었다. 잠깐만 놀다가 가자~ 했지만 해가 질 때까지 놀게 되는 놀이터. 그렇게 푹 쉬다가 2시간 정도 달리면 집. 서울과 경남을 오가는 일이 훨씬 즐겁고 부담 없어졌다.
전주, 춘천, 순천, 구례. 남편 출장차 아이들과 같이 간 곳에서 괜찮은 놀이터 덕을 많이 보았다. 요즘 지역 여기저기 괜찮은 놀이터가 많이 만들어지고 개장하는 것 같아 반갑다. 아이들 누구나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시설 좋은 놀이터는 꼭 필요하다. 불공정과 불평등의 외침, 논란 속에서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들을 열심히 찾아본다. 잘 노는 것도 공부이며 경쟁력이라는 믿음으로 '남들만큼'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과 신나게 놀 궁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