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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밖에서 놀았던 경험이 쌓이고 쌓여

아이들이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능력은 어디서 키워질까. 

지역 카페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보았다. 


"유치원 마치고 집에서 아이가 놀기만 하는데 너무 방치하나 걱정이 돼요..."


놀기만 하는 것이 걱정되는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박물관, 도서관 등 어디를 가거나 무언가를 배우지 않는 시간이 결코 방치나 쓸데없는 시간이 아닐 텐데. 유치원생이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갖고, 멍 때리기도 하고, 마음껏 놀기도 하는 것이 아이들의 본업일 텐데. 양육자들이 느낄 걱정이 공감이 되면서도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게 안타까워 조심스레 댓글을 달았다. 


"유아 때는 놀면서 많은 것들을 탐색하고 배우기도 하고 세상을 접한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충분히 놀 시간을 주는 것만으로 잘하고 계시는 것 같은걸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는데 마음이 포근해진다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다행이다. 어릴 때 스스로 주변을 탐색하고 신나게 노는 건 큰 자산인데.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며 이런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우리 집 두 어린이는 밖에 나가면, 어디 놀러 나가면 집에 갈 생각을 안 했다. 

"엄마, 조금만 더 놀다가요"

그래서 나갈 때는 구체적인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한 공간에서 몇 시간을 놀기도 하기 때문에 되도록 스케줄을 빡빡하게 만들지 않는다. 해가 질 때쯤 집에 들어오겠다 생각하기도 하고, 보통 점심은 김밥을 사 가거나 집에서 준비해 가는 편이며, 대신 아이들에게는 집에 늦게 들어오는 만큼 집에 가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은 없고 바로 씻고 자야 한다는 걸 알려줄 뿐이다.


농촌유학할 때 집 근처 어류생태관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해가 지고 나서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 "거기가 그렇게 늦게까지 놀 만한 곳은 아닐 텐데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시나 보다~" 이웃분의 말씀에 "놀아주거나 해주는 건 없고요, 저는 그냥 앉아서 노는 것 보기만 하고 왔네요"하고 멋쩍게 웃었다. 


사실 생태관은 물고기와 전시관을 천천히 관람해도 2시간이면 소화할 수 있는 규모이지만 점심 즈음에 입장했던 우리는 오후 6시 30분에, 거의 마지막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뭘 했길래 5시간 넘게 있었던 걸까 생각해 보니 전시관을 관람하고 잠시 김밥을 먹고 나서 만들기 작품을 하나 했던 게 컸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건물 밖에서 놀 엄두가 안 났는데 첫째는 거기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보고 둘째는 에코백을 하나 사서 한참을 색칠하고 놀았다. 에코백에 책을 담아 오는 놀이로 발전해서 책을 담아 오면 읽어주고 또 담아 오면 읽어주고 그렇게 하다 보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오후 4시쯤 넘어서 밖에 나갔는데도 여전히 강렬한 햇살. 놀이터 옆 바람 부는 그늘에 앉아있으면서 둘째는 간식을 먹고 첫째는 저기 앞에 그늘이 있는 연못에 가더니 뭔가를 열심히 한다. 둘째도 간식 먹고 오빠한테 갔다가 혼자 놀이터에서 놀다가 더운지 또 오빠한테 갔다가. 멀리서 아이들이 잘 있는지만 보고 그냥 앉아있었다. 어떤 엄마와 아이가 아이들이 놀고 있는 연못에 다가가서 구경하시다가 가시고.


한 삼십 분 넘게 앉아있다가 뭘 하길래 싶어 어슬렁어슬렁 아이들에게 다가가니 나뭇가지로 녹조를 걷어내고 있다. 녹조 걷어 내기 놀이. "엄마 녹조가 너무 심해요"라며 녹조를 떠서 옆에 두는데 내가 볼 땐 녹조가 걱정된다기보다 재미있어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이들은 또 아이들만의 놀이를 만들었다. 



나는 그 옆에 바닥에 또 앉아 가만히 지켜봤다. 둘이 한참을 그렇게 녹조를 걷어내다가 옆에 공룡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놀다가 거의 2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햇볕이 덜 뜨거워져서 생태관에서 샀던 물고기밥을 물고기가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주고 또 한참을 놀았다. 까르르~ 아이는 여치를 잡으러 다니다가 잡고 관찰했다가 놔줬는데 어느새 시계는 6시 30분. 


집에 밥도 없고, 급히 검색해 가는 길에 식당을 찾아서 저녁을 먹고는 식당 바로 앞에 섬진강으로 내려가봤다. 멀리 물에 들어가서 다슬기인지 재첩인지를 잡는 아저씨들. 아이들은 또 거기서 돌멩이 아래도 살펴봤다가 둘째는 갑자기 돌을 들고 오더니 "여기 준비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역할극 시작. 먹는 척만 하면 되니까 그리 어렵지 않고. 둘이 뭔가를 하면 또 노는데 나는 또 멀리서 지켜볼 뿐. 덕분에 노을 감상도 하고 강 근처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좀 있길래 아이들이랑 같이 줍고 집에 오니 저녁 8시. 후다닥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7살, 9살이었던 작년에 아이들은 오랜 시간 밖에서 정말 잘 놀았다. 내가 함께 하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워낙 밖에서 오래 자주 놀았던 아이들이라 어떤 놀이를 하며 놀까 찾고 실행에 옮기고 즐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 엄마의 게으름 때문인지, 신나게 같이 놀아주는 능력의 부재 때문인지 아이들이 심심해 보일 때도 그냥 둘 때가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아이들과 밖에 자주 나가는 것. 일단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이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혼자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심심해서 같이 놀자고 다가오면 주변에 있는 것들로 아이와 놀아주기도 쉽다. 놀이터에 떨어진 소나무 가지들로 머리카락도 만들어보고, 솔방울 모래로 소꿉놀이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혼자 이것저것 주워와 놀기도 하고, 주변에 친구들이 있으면 더 신나게 오래오래 놀았다. 


바깥에서 놀다보면 놀이감은 무궁무진하다.


요즘 어디 나가면 오랜 시간 잘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밖에서 놀았던 짬밥(?)도 무시 못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아이들 기질과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많이 놀아본 아이들이 혼자서 노는 방법도 잘 터득하겠다 싶기도 하고. 물론 어떤 분들은 그렇게 계속 노는 맛을 들이면 공부도 안 하려고 해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같이 놀아달라고, 아무것도 없고 놀 것도 없다고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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