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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체력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열심히 뛰어놀다 보면 체력은 덤으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친정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는데 추워서 꼼짝도 안 하던 어느 날 친정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춥다고 집에만 있으면 어쩔라고..."

아이 감기 걸릴까 봐 못 나가겠다는 말에 "감기도 걸리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큰 거지" 하셨지만 아이들이 아프면 나도 힘드니까 어릴 때는 날씨에 민감해지고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나의 이런 걱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바지자락을 잡고 자꾸만 나가자고 하는 아이. 그래서 추운 날에는 따뜻하게 꽁꽁 싸매고 나가서 놀다 들어와서 몸을 좀 녹이고 또 나가곤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 둘과 집에서 복닥복닥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는 게 훨씬 시간도 잘 가고 아이들도 나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많았던 첫째는 어릴 때부터 밤에 재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신나게 놀았던 날에는 잠을 더 잘 잤다. 아이들을 낳고 다정하게, 재미있게 놀아주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체력은 괜찮다고 자부했으므로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집 근처에도 나가고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고 많이도 다녔다. 


친정아버지께서는 내가 20살이 되던 해 처음 자동차를 사셨다. 시골 할머니집에 갈 때 엄마 아빠를 따라 세 자매가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명절에는 사람들이 많아 입석으로 갈 때도 있었는데 버스 뒷 쪽 턱에 앉곤 했다. 할머니께서 살았던 남해는 따뜻해서 좀처럼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데 내가 초등학생 때 어느 설 연휴, 눈이 엄청 많이 내리고 쌓였다. 읍내까지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서 엄마 아빠를 따라 걸어서 산을 넘기도 했는데 걷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엄마에게 힘들다고 투덜대지도 않았다. 눈 쌓인 길을 걷는 게 그저 재미있었던 그때. 다섯 명이라고 안태워주는 택시기사도 있어서 몰래 숨어있다가 부모님이 택시를 잡으실 때 언니, 동생 손을 잡고 달려가곤 했는데 "우리 집에도 차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될 때까지 자가용 없이 걷고, 버스 타고 여기저기 다녔다. 그 덕분인지 언니와 나, 동생은 체력 하나는 뒤처지지 않는다. 특히 아주 튼튼한 하체를 자랑한다. 오죽하면 언니 친구는 우리 식구들 보고 '태릉인 가족'이라 부르기도 했으니. 지금은 이렇게 어릴 때 튼튼한 체력을 키울 수 있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집에서 아기자기하게 놀아주는 건 자신 없고, 가진 건 체력뿐인 엄마를 만난 아이들은 몇 년 동안 많이 뛰어놀고 돌아다닌 덕분에 체력이 좋은 편이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피곤하면 목이 잘 붓는 편이었는데 며칠 무리하고 나면 목이 부어 열이 나고 며칠 내내 아팠고 잘 먹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기를 쓰고 놀고자 했고, 엄마인 나는 아이가 아플까 걱정되면서도 최대한 밤에 일찍 재우는 것으로 목 붓는 증상을 조심했다. 그럼에도 5살까지는 한 계절에 꼭 한두 번은 편도가 부어 열이 나고 고생했는데 아이는 체력을 점차 키우더니 6살 후반부터는 거의 편도가 붓지 않고 자주 아프지 않게 되었다. 활동량이 많아지고 잘 놀고 그러다가 너무 무리해서 좀 아프기도 하고 그러고 나면 또 체력이 한층 좋아지고 하는 과정을 통해 체력이 키워진다는 것을 아이는 보여주었다. 

  

평소에 놀았던 힘을 바탕으로 산에 올라가며 다리힘도 키우도 체력도 키우고. 


튼튼한 체력으로 우리를 따라 곧잘 산에 오르곤 했던 아이들과 구례에서 농촌유학할 때 꼭 노고단을 같이 가보고 싶었다.  


"얘들아 노고단 갈래?" 

노고단이 뭔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어디 간다는 말에 신이 나서 따라나섰는데 산을 오를수록 아이들의 앓는 소리도 커졌다. 그래도 서울에 있을 때 집 근처 관악산이나 삼성산 등을 오르기도 하고, 매일 꾸준히 뛰어놀고 달렸던 덕분인지 제법 잘 따라 올라왔다. 


"조금만 가면 돼, 저기 보이지? 저기 가서 좀 쉬고 또 조금만 올라가면 돼"


그렇게 9살, 7살 아이들을 다독거렸고, 아이들은 그동안 쌓아온 체력으로 노고단 정상에 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아이들에게, 장엄하고 멋진 풍경이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였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다 보니 체력의 중요성을 더욱더 느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는 데도 '체력'이 필수다.

타인을 우아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참 매력적이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그런 시도들을 끊임없이 해볼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이 모든 것들이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겠다. 

<민들레 Vol.118 '함께 읽는 책, 마녀체력, 이현주>


체질적으로 체력이 좋은 아이들도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일단 열심히 뛰어놀아야 체력이 좋아진다는 걸 경험했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 할 때 학습과 함께 강조되는 것이 체력이다.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보다 더 긴장되고 규칙적인 생활에 쉽게 피로해질 수 있기 때문에 초등입학 후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체력,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주고 싶나 보다. 오늘도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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