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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학원 예체능 말고 동네 예체능

운동에 대한 거부감 없애고 즐겁게 시도하기.

몇 년 전, 두 아이들이 어렸을 때 길에서 우연히 '줄넘기 학원'이라고 적힌 차량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 중에는 줄넘기를 배우러 학원을 다닌다는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어릴 때 동네에서,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줄넘기를 배웠던 나는 '줄넘기 학원'의 존재에 꽤나 놀랐다.

 

남학생들은 학교 들어가면 운동 한 두 개는 좀 해야 되더라는 이야기에도 축구 학원도 보내고 수영도 보내고 하면... 돈이 얼마야.. 싶었다. 요즘은 아이들이 어떤 운동에 관심이 있으면 학원부터 알아보는 게 자연스럽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릴 땐 조그마한 라켓이랑 말랑한 공을 사서 아이들과 공 주고받기도 하고, 탱탱볼로 널찍한 곳에서 공차기도 자주 하고. 아이들이 줄넘기에 관심 있어할 땐 줄넘기 사서 놀이터 한쪽에서 연습하기도 하고. 몇 날 며칠 연습해 한 개 뛰어넘기를 성공했을 때 아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생생하다. 그렇게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학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달리고 뛰고 공놀이하고 그러다 보면 운동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드는 것 같다. 


농촌유학 하던 때엔 숙소 뒤에 널찍한 마당이 맘에 들었었다. 서울에 있던 남편은 어느 날, 당*마켓에서 중고로 아이들 골프채를 샀다며 택배로 보내주었다. 여기 농촌 유학을 오면서 살고 있는 집의 뒤뜰 공터가 꽤 넓은데 삼면으로 그물까지 쳐 있어서 재미 삼아 골프 연습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아니 갑자기  웬 골프채냐고, 그리고 아이가 관심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중고라도 덜컥 사버리면 어쩌냐고 남편에게 한 소리 했다. 혹시나 되팔지도 모를 경우를 생각해 한동안 박스도 그대로 두고. 


내가 뭐라 하건 말건 남편은 새것 같은 물건을 저렴하게 득템 했다며, 그것도 왼손잡이, 양손잡이 세트로 샀으니 아이 둘 다(둘째는 왼손잡이) 연습할 수도 있고 여기 있는 다른 친구들도 재미로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무엇보다 남편은 어릴 때 꼭 학원 같은 곳에서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직접 해보고, 재미있게 놀듯이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골프는 고급 스포츠라는 인식이 많은데 그런 인식을 접하기 전에 아이가 즐기는 경험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는 쪽이었다. 


어쨌든 골프채는 택배로 도착했고, 골프공을 중고마켓에서 사 온 남편은 아이에게 안전하게 골프를 치는 규칙들을 알려주었다. 전방에 사람이 있으면 절대 치지 말 것, 어른이 있을 때만 골프 연습을 할 수 있고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이 있을 경우 꼭 자기 자리에서만 할 것 등. 참고로 남편은 골프를 배운 적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 우리 둘 다 못하는 종목을 어쩌려고 싶었는데 남편은 스크린 골프 연습장에서 친구들이랑 골프 쳤던 경험을 더듬어가며 아이와 공을 맞히는 연습을 했다. 둘째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첫째는 재미있는지 첫날 2시간 넘게 스윙하며 흥미를 보였다. 둘째도 혼자 잔디밭에서 놀다가 잠깐씩 와서 공을 맞추기도 하다가 갑자기 골프채 두 개로 바이올린 켜듯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혼자 깔깔깔 웃었다. 남편이 서울에 올라간 뒤에도 아이는 가끔 골프 연습을 하고 싶다고 해서 다른 친구랑 같이 하기도 하고 혼자 하기도 하며 공을 열심히 맞힌다. 헛스윙도 여러 번이지만, 아이가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하니까. 혹시나 해서 두었던 박스는 버렸고, 뒤뜰 잔디가 손상될까 봐 인조 잔디도 자그만 걸로 주문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왕 예체능을 시작하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오래 배울 각오(?)를 하고 시켜야 한다고도 말한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아이가 처음부터 흥미를 갖고 있다면 비용을 들여 제대로 배우는 게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이 부담스럽고, 제대로 알려주는 걸 따라가다 보면 재미를 잃을까 우려도 된다. 예전에 테니스 잡지 기자로 일할 때 해외의 키즈 테니스 아카데미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아이들의 경우 라켓을 잡는 법이나 자세를 먼저 가르치기보다 공을 가지고 놀면서 공이랑 친해지는 게 우선이고, 어떻게 잡든 라켓에 공을 맞히며 테니스라는 종목에 친숙해지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흥미가 있어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는 것. 


가끔씩 글을 기고하고 있는 테니스 잡지에 엄마표 테니스를 연재할 때 푹신푹신한 장난감 라켓으로 풍선을 치는 놀이, 공을 라켓 위에 두고 누가 안 떨어트리고 목표지점까지 가나 게임하기 등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라켓과 친해졌다. 아이들 손에 힘이 좀 생기고 나서는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자주 했다. 한번씩 땅에 튀긴 공을 뛰어가서 라켓으로 맞히면서 전달하는데 계속 연습하다 보니 몇 번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됐다. 



축구도 사실 아파트에서 친구들이랑 형들이랑 같이 하던 동네 축구가 거의 전부였지만 농촌유학하던 때는 무료 축구 교실이 있어 아이가 정말 즐겁게 축구를 배웠다. 값비싼 OO교실, OO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되더라도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기회는 있다. 비싸지 않은 장비를 구입해(요즘은 중고 시장도 다양하니) 넓은 운동장으로 나가서 몇 번 쳐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재미를 느끼고 뭐든 시도해 보는 힘을 얻는다. 스펀지 공과 스펀지 방망이로 야구 놀이를 하며 조금씩 규칙을 배우기도 한다. 


모든 시도는 아름답고

모든 시도는 선한 영향력이다.

초급반이어도 스스로부터 행복할 전문가들을

응원한다. 그들을 보며 같이 힘을 낼 수 있게 된다.

중급 - 고급 - 마스터...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모든 요일의 기록 중에서> 


아이들이 전문가들에게 맡겨지기 전에 그저 다양하게 시도하는 경험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교육하는 사람, 전문가들 눈에는 아이들의 재능, 아이들의 실력 향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부모들의 눈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즐기는 모습 자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법이니까. 그런 눈빛 속에서 아이들은 잘 못해도 즐겁게 시도하거나 재미없으면 맘 편히 시도해보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무엇보다 아이들이랑 운동하다 보면 어른들도 덩달아 운동이 되니 1석2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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