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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Oct 19. 2023

매일 조금씩 나의 세계를 넓혀간다

아이의 삶만큼이나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2,3년 전 코로나가 한참일 때 끄적였던 일기를 보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일상에 지쳐 놀이터 한쪽에 힘없이 앉아 아이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잘 자라 수 있게 온 힘을 쏟고 있는 나의 세계는 안녕한가. 코로나 시국에 매일 일상은 비슷하고, 내가 만나는 세상은 더 좁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곤 한다. 그럴 땐 이 말을 떠올리며 다짐한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라도, 나의 세계를 가꾸자고"


2,30대 시절, 회사를 다닐 때는 50대 부장님, 40대 과장님, 대학교를 갖 졸업해 입사한 20대 초반의 후배까지 만나는 사람들의 연령이 참 다양했다. 생각해 보면 부장님 과장님과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경험에서도 배우는 것들이 있었다. 띠동갑 후배와 같이 일을 하면서 요즘 세대들은 이렇구나, 나 때와는 이런 게 다르구나 차이도 느꼈고 후배에게 배우는 점들도 있었다. 일 때문에 싫든 좋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엄마가 되고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다른 분야, 다른 상황의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맺는 게 쉽지 않았다. 새로운 만남과 지속적인 교류는 내가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맺고 있던 관계마저도 소원하게 만들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내 시간도 모자란데 새로운 관계까지? 그럼에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으려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새로운 관계를 맺고 배우며 소통해야 한다'라고. 책, 글쓰기, 사람,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통해서 나의 세계를 계속 확장시켜야겠다고. 이건 아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육아를 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어떤 강연을 듣거나 수업에 참여하는 일도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아이가 좀 커서 학교에 들어가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보다 내 시간이 부쩍 더 줄어들었다. 책을 읽고 온라인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시간이 아주 조금씩 내 시야를 넓혀 주었다. 고집스러운 면이 좀 많아서 내 생각이 아집이 될까 염려스러운데 이런 과정은 앞으로도 꼭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읽는 것만큼 부모가 책을 가까이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잠자기 전에 책 읽어주기를 약속했다면, 부모도 하루에 10분, 한 달에 한 권, 꼭 책 읽기를 같이 약속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꼭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육아에 지친 나를 돌보는 힘까지 덤으로 얻었다.  


깊이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내가 뭘 어려워하고, 어떤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게 되면 관심이 생기고, 애정이 생긴다. 책은 제일 먼저 우리 자신을 돌볼 힘을 선물한다.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북 코디네이터 p74>


가끔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줌 강의로 듣기도 하고, 이제 대면 강의를 하는 곳도 많아 구청 소식지나 도서관 사이트를 열심히 기웃거리기도 한다. 올해는 어린이도서연구회 신입회원이 되어 책 모임도 하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소설 <토지>를 줌으로 읽고 이야기 나누는 윤독 모임도 하는 중이다. 어떤 사람들은 돈도 안 되는 일들에 뭘 그렇게 열심히냐고 하지만 무엇보다 내 일상에 활력과 동력을 준다. 아이들과 내가 각자의 인생에 충실할 수 있는 준비 과정이 된다. 내가 읽은 책,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은 내 삶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늘 고민하게 해 준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공부한 무엇인가, p82>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니 그전부터 아이의 학습에 대해 고민한다. 아이들 학원을 알아보고, 하루 공부 스케줄을 관리하는 시간 속에 양육자들의 배움은 들어설 틈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아이의 성적이나 학습 결과를 신경 쓰는 에너지를 무언가를 배우거나 좋아하는 일에 나눠 쓰다 보면 오히려 아이들과도 적절하게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작가님이 예전에 어느 강의에서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소통과 순환, 즉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이것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경우 억눌린 상태에서 타인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대가 고립감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분노를 마음 안에 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소통과 순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면 꾸준히 읽고 쓰는 것이다. 내 감정이 분출되지 못한 채 억눌려있지 않도록 계속 쓰고, 나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이끌려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이끌어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를 깨기도 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되는 과정은 나에게도 육아에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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