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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Tumblers & People

: 가게에 찾아오는 텀블러들

by 낙타

세상에는 다양한 텀블러가 존재하고 카페 겸 비스트로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텀블러를 마주하게 된다.


몽 피투에서 일한 지 3개월 가까이 되고 있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난리 치던 스탠리(Stanley) 텀블러는 별로 보지 못했다. 하긴 어떤 간 큰 인간이 조그만 영세사업자 카페에 와서 1.5리터짜리 라떼를 달라고 하겠는가. 예티(YETI)는 가끔 보나? 재밌는 건 압도적인 대다수가 집에서 굴러다니는 걸 대충 집어온 듯한 모양새의 텀블러들이라는 것이다. 어디 행사에서 경품으로 받았거나, 우연히 텀블러가 필요한 순간에 눈에 띈 가게에 들어가 산 모양새.


크기도 가지 각색. 스탠리 텀블러처럼 용량이 리터 단위가 넘어가는 텀블러도 간혹 본 적이 있지만 주먹보다도 작은 컵을 가져오셔서 코르타도를 담아달라던 손님도 있었다. 어떤 손님은 크기가 다른 두 가지 텀블러를 들고 와서 같은 사이즈의 같은 음료를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그냥 우유 들어간 커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게 코르타도든, 플랫화이트든, 라떼든, 카푸치노든 상관없이.


여러 가지 텀블러를 봤지만 삐까뻔쩍한 새 텀블러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흠집이 나있고 코팅이 벗겨져있고 안에 지워지지 않는 때가 껴있는 텀블러가 찾아온다. 그럼 어찌 되었든 나는 뜨거운 물을 담아 토렴 해놓고 음료를 준비한다.


제일 신기한 건 머그컵을 들고 오시는 손님들이 계신다는 것. 그것도 꽤 자주. 집이 이 근처이신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멀쩡한 가방 속에서 머그컵을 꺼내거나 혹은 그냥 손에 들고 오신다. 부엌 찬장에서 방금 막 꺼내온 것 같은 머그컵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까지 자유로운 걸까 싶어서 기분이 생경하다. 또 틱톡에서 나도 모르는 트렌드가 생겼나.


자주 찾아오는 손님들만큼이나 자주 찾아오는 텀블러와 머그컵도 있다. 가게에 들어서는 낯선 손님의 손에 들려 있는 낯익은 머그컵을 보고 손님을 알아본 적도 있다. 가게에 자주 방문하는 의사 S는 자리에 앉으면 항상 자신의 이름이 쓰인 견출지가 붙어있는 검은색 머그컵을 꺼내 웃으며 건넨다. 그 안에 들어가는 건 99% 따듯한 아메리카노다. 항상 큰 개를 데리고 오는 J의 텀블러는 캐나다 기념품 샵에서 산 것 같이 캐나다 원주민 문양이 그려져 있다. 캐나다 사람이 캐나다 기념품을 산 것으로 보아 J도 그 텀블러를 사용하는데 딱히 고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P도 어디선가 증정품으로 받은 텀블러를 가져와 매번 엄청 뜨거운 라떼를 담아달라고 한다. P는 흠집이 난 킨토(KINTO) 텀블러를 들고 와서 항상 아메리카노 미스토를 담아달라고 한다.


한창 텀블러에 미쳐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내게 이 나라 사람들의 무심함은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어차피 음료 담아마시는 컵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그 무심함. 무언가 하나를 사용해도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이 많은 내게 있어 그런 무심함은 항상 새로운 텀블러의 모양을 하고 가게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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