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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얼중독자 Apr 22. 2024

병상에서

아픔

눈병이 며칠째 낫질 않습니다. 코로나든, 목감기든, 요로결석이든, 임질이든, 뭘 걸려도 기분만은 괜찮았는데 눈이 불편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굳이 어려운 책을 읽으며 애를 쓸 필요가 없어서, 대신 읽고 싶었던 소설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것도 조금 읽다가 던져두긴 했지만요.


요즈음 술을 가까이하긴 했죠. 유튜브에 나오는 위스키 동영상을 보다 보면 꼭 한 잔 하고 싶어 져서요. 니트로 마시는 에반 윌리엄스 버번, 위스키를 진하게 넣은 하이볼, 최근에 맛을 들인 캔맥주. 그런 밤이면 다음날 아침마다 무거워진 기분으로 잠에서 깨고는 했어요. 그러다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불평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비뇨기과도 다녀왔습니다. 며칠째 불편함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소변검사와 매독, 에이즈를 검사하기 위한 혈액검사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 또한 불평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적어도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줬잖아요.


기분이 영 좋지 않네요. 며칠째 아파서요. 그래서 오랜만에 차를 우리고 있습니다. 뜨거운 물속에 잠기면 동그랗게 꽃이 피는 차예요. 이렇게 소소한 클라이맥스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차가 다 떨어져서요. 그래도 뜨끈한 찻물을 마시면 기분은 좀 나아집니다.


정신과에도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병원을 3군데나 다녀왔으니 병가를 알차게 쓴 셈입니다. 별 거 없었어요. 으레 그렇듯, 2주일간의 생활을 묻고 답하고, 약간의 개선책을 나누고, 다음 예약을 잡았습니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어요.


결국 아침, 점심, 저녁, 취침 전까지 하루에 4번씩 서로 다른 3종류의 약을 삼키고, 뿌리고, 바르게 됐습니다. 2일 뒤에는 안과에 다시 가봐야 하고, 3일 뒤에는 비뇨기과에 전화 걸어 검사결과도 알아봐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바쁘네요. 그래도 오늘은 병가를 냈으니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글도 씁니다.


저는 며칠째 낫질 않습니다. 이 모든 게 ‘네 탓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이 또한 불평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사실은 그 말이 듣고 싶어서 이만큼 적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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