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취미 생활에 갇힌 지도 어언 5년, 컬렉션 속 시계의 개수는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나의 시계들. 버리지 못할 만큼 소중한 시계들, 새것처럼 고쳐 쓰고 있는 시계들, 꼭 사고 싶었고 손에 넣은 시계들, 싼 값에 횡재한 시계들, 재미있는 인연으로 손안에 들어온 시계들, 충동적으로 사놓고 팔리지도 않으면서 안 쓰는 시계들.
그렇게 마련된 나의 시계 컬렉션은 20개가 넘어간다. 시계줄은 시계보다 10배가 많다.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요즘도 하루에 4개, 5개씩 시계를 돌려 찬다. 시계 크라운이 풀렸을까 봐 계속 손끝으로 만지작 거리고, 시계가 어떤 일로든 망가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중고 시계 사이트를 하루에도 30번씩 들락거린다. 시계를 충동적으로 사는 일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살 때 더 고민해서 사고, 팔 때 더 고민해서 판다. 덕분에 시계 컬렉션도 시계 생활도 꽤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마련된 딱 20개 안팎의 시계.
딱 20개 안팎의 시계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계를 거쳐왔는지 모르겠다. 딱 20개 안팎의 시계를 마련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왔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수집도 해보고, 수리도 해보고, 판매도 해보고, 분해도 해보고, 사기도 당해봤다. 대체 손목 위에 올라가는 이 시계 취미가 무엇이 좋아서 그 고생을 했는지, 딱 20개 안팎의 시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유튜브 <생활인의 시계(SHW)> 채널의 호스트 김생활(김성준)은 ‘시계 문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 “(시계 문화라는 게 있다면) 결국은 자기 손목 위에 올리는 물체가 있고 여기에 뭔가 사람들과 나눌 만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시계를 사랑하는 이들이 향유하는 시계 문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라고 느껴진다.
그러한 시계 문화를 누리고 향유해 왔지만 여전히 드림워치, 살면서 꼭 가지고 싶은 시계는 손에 넣지 못했다. 드림워치를 손에 넣을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20개 안팎의 시계를 사느라 돈을 참 많이도 썼지만, 드림워치의 가격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내가 가진 시계 컬렉션을 모두 처분한다고 해도 드림워치 하나를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20개 모두를 팔아버리고 1개의 드림워치를 사고 싶다고 생각했겠지만,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이 시리즈의 글을 다시 쓰게 된 원동력이기도 하다.
나의 사촌형에게는 빈티지 롤렉스가 있다. 외할아버지의 유품이면서 당시에도 값이 나가던 콤비모델. 예전에는 나의 좀스런 컬렉션을 몽땅 들고 가서 그 빈티지 롤렉스 하나와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 상대가 원했다면 당장에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그때와 지금의 차이이다.
김생활은 앞서 언급한 같은 영상에서 “시계의 가격대가 시계를 차는 사람의 품격을 정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시계 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명제였고, 가장 납득하기 힘든 명제였다. 시계가 보여주는 계급과 문화와 재력의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비싼 시계 앞에서는 내 시계를 감추었고, 값싼 시계 앞에서는 내 시계를 드러냈다.
한동안은 이 명제를 납득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그동안은 자신이 갖는 열등감에 대해 질릴 만큼 질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이러한 생각을 억지로 납득하지 않기로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내가 왜 납득하지 못하는지 분석하는 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시계의 가격대가 시계를 차는 사람의 품격을 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제대로 납득하거나 체화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비싼 가격의 시계를 욕망하고, 그 비싼 가격의 시계가 보여주는 ‘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최근 나의 20개 안팎의 시계 컬렉션에 추가된, 딱 1개의 시계 때문이다.
참고문헌
"구독자 님, 직접 뵙고 시계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feat. 해밀턴 익선스토어)." 유튜브 비디오, 34:59. SHW 생활인의 시계, 2024.1. https://youtu.be/W3sudxYX_Is?si=JgbLt91ksWjtDCW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