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트레이닝 철학
걷는다느 것은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은은 저지된 낙하이며, 회피된 붕괴, 제동이 걸린 참사이다.
이렇게 해서, 걷는다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 되었다.
-폴 살로팩
우리느 지구상의 모든 육지 동물중 유일하게 두발로 걷는 이족보행을 한다. 다른 동물들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파충류의 전성시대(공룡시대)에도 이족보행하는 동물이 있었다. 지금은 사리진 티라노 사우르스, 벨로시 랩터 등. 그리고 현재에도 살아가고 있는 캥거루, 타조 등등.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도 이족보행을 하는데 왜 속도를 잃었을까. 바로 꼬리이다. 우리 유인원과 다른 영장류와의 차이점은 꼬리의 유무이다. 꼬리가 있었던 흔적(꼬리뼈)은 있지만 지금은 꼬리가 없다.
그리고 또하나의 차이점은 바로 직립이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척추를 꽂꽂이 세운 직립자세를 유지한다. 두발보다 네발이 빠르다. 직립하면서 앞발 즉 상체의 힘은 더 약해졌다. 힘과 속도를 일었다면 분명 생존에 불리했을 건데 왜 우리는 두발로 그리고 직립을 하게 되었을까
다시 걷는다는 건 무엇일까. 걷기 운동을 많이 하는 요즘 이제 걷는것도 운동이란 인식이 많이 생긴것 같다. 본질적으로 '걷는다'는건 Locomotion이동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족보행은 이동수단 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걷는다'의 의미를 찾아갈수가 없다.
Locomotion은 모든 동물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자연의 생태계는 태양으로 부터 생명을 얻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도는 시간을 1년이라고 정했듯이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의 기준으로 돌아간다.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 한다. 모든 동물들에게 Locomotion은 생존이자 본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힘과 속도를 포기하고 직립 이족보행을 하게 되었을까.
환경적인 요인 변하게 되면서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가면서 이족보행을 하게 되었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진화론적인 이야기 보다 내가 생각하는 '걷는다'것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볼까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까. 바론 생존이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바로 생존이다. 모든 행동들은 여기에서 출발 한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힘과 속도를 잃어어가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게 된 이유. 굳이 신체의 기능을 다운그레이드를 선택했던 이유. 효율이다. 우리는 에너지의 효율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선택했는것 일수도 있다. 현재로선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는거 같기도 하다.
우리 몸은, 신체는 생존을 중심으로 에너지를 아낄려고 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돌아간다. 외부의 저항으로 부터 가장 효율적인 자세를 찾아갔다. 지구에는 Gravity중력이 존재한다. 지구의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중력의 힘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 Gravity중력이라는 외부저항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직립은 Gravity중력에 대항해 에너지효율을 높일수 있는 자세이다.
지금 당장 네발자세와 비교 해봐도 엄청난 차이가 느껴질 거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두발로 서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대분분 생후 12개월 전후로 중력이란 외부저항에 대항해 똑바로 서서 걸음을 첫 걸음을 땐다. 우리 몸에는 약 400만년간 쌓아온 DNA와 중력이라는 외부저항에 맞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두발로 서게되었다(혹은 주변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걸음마를 땐다는건 일종의 중력을 이용한 놀이일지도 모르겠다. 중력중심이 직립을 하게되어 높아지게 됐다. 높아진 중력중심이 위치 에너지를 만들게 되었다. 첫걸음마를 땐다는건 직립을 하며 만들어진 위치 에너지를 이용한 놀이이자 적응을 위한 실험 혹은 탐험일거다. 위치 에너지가 앞뒤 좌우로 흔들리다가 넘어지기를 반복 우연히 앞으로 떨어지는 본능적으로 한발이 앞으로 뻗어지며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 하는것이 걷기의 시작이다. 점점 이 방법을 연습하게 되다 결국 스스로 넘어지지 않게 몸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한발에서 다음발 그리고 다음발. 그렇게 생후 12개월 후에 인간 아기는 걷기 시작한다.
걷는다는건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은 진화 시켜온것이 바로 이족보행 이다. 아니면 그 반대일수도 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두발로 걷는다는 건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가장 절약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중력을 이용해서 말이다.
직립을 해서 높아진 중력중심은 위치 에너지를 만든다. 한발을 앞으로 뻗으면 중력줌싱이 아래로 내려가며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앞으로 내딛은 발이 땅에 닿으면 중력중심은 낮아진다. 다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선 중력중심을 높여 위치 에너지를 만들어 내야한다. 이때 뒷발이 스윙을 형태로 관성을 만들어 중력중심을 다시 올려서 위치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Locomotion이동은 중력과 관성이라는 자연 법칙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 자연법칙을 이용하면서 우리는 최적의 에너지 효율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우리 몸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본능적인 반사패턴들이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차차 얘기 해보도록 하겠다.
모든 둥물들, 더 나아가 모든 생명체는 '움직인다'는 것이 곧 생명을 뜻한다. 동물들에게 생존은 '움직인다=Locomotiom' 이다. 우리는 그 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방식으로 진화를 해왔다. 혹은 그렇게 진화되서 생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최적의 효율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가 두발로 걷게 된건 외부의 저항, 중력에 대항해 에너지를 아끼고 힘과 속도를 잃었지만 두손의 자유와 보다 오랫동안 에너지ㄹ 손실을 줄이며 Locomotion이동 하는 방법을 택했다. 걷는건 이동수단 이다. 우리에게 '걷는다'는 건 생존이자 '살아있음' 그 자체이다.
400만년전 인류가 직립을 하게 됐고 두발로 걸으면 전세계를 탐험하고 여행했다. 현재의 우리는 바다를 이동하고 하늘을 날며 땅을 이동하는 보다 효율적이고 빠른 이동수단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발로 이동하는 방식을 고수 해야되는 이유는 그것이 동물들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갖가지 현대병이 생긴이유들. 현대병이라고 불리는 이유들은 역시 운동부족의 영향이 크다. 아니 운동부족 이라기 보다 움직임을 잃어버리거나 활동량이 줄어서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편리함을 얻었지만 점점 본능을 거스르는 생활 방식에 현재인류는 진화가 덜 됐는걸 수도 있겠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해 새롭게 진화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100~200년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즉 현재의 우리는 여전히 400년전의 본능을 유지할수 밖에 없을 거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운동의 역할이 아니다. 삶이자 인생이다. 걷는다는 이동 수단이 없어지면 우리는 살아갈수 없다(물론 대체할수 있는 기계들이 발명되겠지만 현저히 삶의 질은 낮아질것이다). 화장실을 가든 집앞에 식료품을 사러가든 걷는다는 이동수단이 가장 효율적이고 번드시 필요하다. 운동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존재 자체가 Locomotion이동 즉, 걷고 달리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아직은 그 본능을 거스를수 없을거라 본다.
우리가 운동을 해야하는 이유는 결국 이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근육질 몸매, 날씬한 몸매도 좋지만 우리는 이 근복적인 문제인 Locomotion이 잘 되야 할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생존이다. 잘 살아가기 위해 외부의 환경을 내가 원하는대로 조절 할수는 없다. 하지만 내부의 힘, 낸 신체를 잘 다룰수있는 건 스스로가 조절 가능한 힘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구조전문가 박동훈은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 싸움이야
바람,하중,진동.
있을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거야..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거야."
외력보다 내력을 더 세게.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약해지고 정신이 약해지면 몸도 약해진다. 마음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고 몸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이자 운동코치로서 운동을 지도하는 방향성이다. 운동의 기술이 아니라 진짜 내력을 키워주고 싶다.
앞으로 계속 말하겠지만 나의 트레이닝의 주 목적이자 방향은 결국 걷고 달리기다. 이것이 중심이자 트레이닝 베이스다. 나 또한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중이다. 달리기는 그것을 위한 훈련이다.
걷는다는 것의 의미는 정말 나에겐 남 다른다. 걷고 달릴수 있을때야 말로 정말 인간이 느낄수있는 자유를 느낄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기 위해 걷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잘 걷고 잘 달리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할 이유다. 두발로 걷는다는 건 우리의 생존 방식이다. 잘 살아가기 위해선 걸어야 한다. 당연하다고 느꼈던 인간 특유의 이동방식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관점이 생겼기를 바란다.
나에게 운동을 배우러 오신 분이나 내가 알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삶이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걷기 #운동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