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닫힌 문을 두드리며
동사무소 직원이 남겼던 ‘법률 상담’이라는 말은 민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네 사거리 주유소에서 쉴 새 없이 기름을 넣고 손님을 응대하며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민수의 온 신경은 진우의 주민등록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쏠려 있었다.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이나 주말 휴식 시간을 쪼개어, 민수는 진우의 손을 굳게 잡고 거리로 나섰다. 어제의 끔찍했던 기억 탓에 진우를 두 번 다시 혼자 두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형제는 무료 법률 상담소와 구청 복지과 등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현실은 동사무소에서 마주했던 벽만큼이나 높고 차가웠다.
"출생증명서나 부모님 신분증이 전혀 없으면 저희도 당장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가족관계등록 창설 재판을 하셔야 하는데, 미성년자가 혼자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담당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서류 한 장 없는 일곱 살 아이의 존재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막막하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낯선 법률 용어와 차가운 시선들이 민수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민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버텼다. 여기서 포기하면 진우는 파출소 경찰관의 말처럼 영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남게 될 터였다.
수소문 끝에 민수는 동네 외곽에 위치한 작은 국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 안은 서류 더미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낡은 책상 너머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중년의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무슨 일로 왔지? 학생이 올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변호사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물었다. 민수는 기름 냄새가 밴 손을 바지에 쓱 닦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동생…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서요."
변호사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교복도 입지 않은 앳된 얼굴의 민수와, 형의 뒤에 숨어 눈치만 보는 작은 진우에게 머물렀다. 민수는 파출소와 동사무소에서 겪었던 일,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사실, 그리고 진우가 병원 출생 기록 하나 없이 이 동네에서 자라왔다는 것을 차분하지만 간절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변호사의 미간은 점점 좁아졌다.
"부모도 없고, 산부인과 기록도 없다... 이거 완전 맨땅에 헤딩이네."
변호사의 무거운 한숨에 민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민수가 고개를 푹 숙이려던 찰나였다.
"형, 나 때문에… 또 안 되는 거야...?"
진우가 민수의 옷자락을 꽉 쥐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작고 떨리는 목소리가 사무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변호사는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고는 두 형제를 가만히 응시했다. 부모 없이 홀로 어린 동생을 책임지려는 십 대 소년의 절박함과, 세상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면서도 형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일곱 살 아이의 맑은 눈망울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강하게 흔들었다.
"...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최민수입니다. 동생은 최진우고요."
변호사는 굳은 표정을 살짝 풀고는 이면지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민수 군. 이거 엄청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싸움이 될 거야. 법원에 가서 진우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하나부터 열까지 다 증명해야 해. 중간에 포기 안 할 자신 있어?"
민수의 눈이 커졌다. 언제나 '안 된다'는 차가운 대답만 듣던 형제에게 처음으로 내밀어진 따뜻한 손길이었다. 민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네!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진우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게요."
변호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서류를 민수 쪽으로 밀어주었다.
"좋아. 그럼 나도 한 번 제대로 도와보지. 일단 진우가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왔다는 걸 증명해 줄 사람들이 필요한데... 동네에서 증인으로 서 줄 만한 이웃들 좀 찾아볼 수 있겠어?"
그 말에 민수의 머릿속으로 낡고 비탈진 달동네의 익숙한 골목과 그곳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네... 찾아볼게요. 아니, 꼭 찾겠습니다."
민수는 진우의 작은 손을 꽉 쥐었다. 한 번도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의 굳건한 문이, 아주 조금씩 삐걱거리며 열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