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형제의 다짐

by 야매해리

동사무소에서 현실의 높고 척박한 벽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형제는 말없이 비탈진 골목을 걸어 올라갔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둘이 맞잡은 두 손은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진우는 작게 숨을 삼키며 형의 보폭에 조심스레 걸음을 맞췄고, 민수는 동생의 걸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손에 힘을 주어 더욱 단단히 감싸 쥐었다.

낡은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형광등 불빛이 형제의 얼굴을 비추었다. 어제와 똑같은 방이었지만, 세상으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하고 돌아온 두 사람에게 이곳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다가왔다. 진우가 먼저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들어와 방 한가운데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자, 민수는 그런 동생을 바라보다 이내 쭈그려 앉아 진우와 시선을 맞췄다.

“…진우야.”

민수의 부름에 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 많이 무서웠지.”

진우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민수는 그 작은 끄덕임만으로도 동사무소에서 진우가 얼마나 불안함을 꾹꾹 참아왔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민수는 나지막하지만 흔들림 없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형이… 네 출생신고 꼭 해줄게. 뭐가 필요하든, 얼마나 걸리든… 형이 다 할게.”

진우는 커진 눈으로 형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나도 학교 갈 수 있어?”

민수는 순간 목이 뜨거워져 옴을 느꼈지만, 꾹 침을 삼키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응. 갈 수 있게 해줄 거야. 세상 어디에서도… 너를 찾을 수 있게.”

그제야 진우의 얼굴에 아주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텅 빈 공터에서 보았던 얼어붙은 얼굴과는 확연히 달랐다. 진우는 한 걸음 다가와 민수의 옷자락을 가볍게 움켜쥐며 말했다.

“…형. 나… 형이랑 있으면 괜찮아.”

그 말에 민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진우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꽉 껴안는 것이 아니라,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아주 조심스럽고도 애틋한 포옹이었다.

방 안의 공기는 따뜻했다. 밖에서 느꼈던 공포도, 동사무소에서 느꼈던 무력함도 잠시나마 잦아들었다. 민수는 진우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속으로 굳게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가 아니라… 안 되는 게 없어질 때까지 해야 돼.’

동사무소 직원이 말했던 법원이라는 벽이 아무리 높아도, 절차가 제아무리 복잡해도 민수는 오늘처럼 결코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진우가 민수의 품에서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형… 우리 약속한 거 잊지 말자.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

민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절대 안 잊어.”

희미한 골목길의 소음만이 스며드는 조용한 방 안에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나란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민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주 작지만 어떤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강한 불씨 하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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