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현실의 벽

by 야매해리

햇살이 방 안을 따스하게 비출 무렵, 민수는 입을 열었다.

“진우야 오늘은 출생신고 하러 가보자.”

진우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형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고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동사무소 — 첫 번째 벽 앞에서

동사무소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민수는 번호표를 뽑아 들고 진우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진우는 의자 끝에 살짝 걸터앉아 발끝을 모은 채 작게 흔들었다. 긴장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몸짓이었다.

-띵 동-

민수와 진우의 차례를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35번 이세요?”

"네"

직원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답하면서 민수와 진우는 동시에 창구 자리에 앉았다.

창구 너머로 보이는 여성 직원은 처음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민수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말했다.

“… 제 동생… 출생신고를 하려고요.”

"출생신고요? 주민등록증 발급받으시는 게 아니고요?"

"아... 네. 동생이 출생신고가 안되어있다 해서요..."

민수는 잔뜩 주늑든 목소리로 답을 했다.

"어... 잠시만요. 조회 먼저 해볼게요. 동생 이름이?"

"최 진우입니다. 저는 최 민수고요."

"잠시만 학생"

직원은 컴퓨터를 가지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 사이 민수에게 질문을 이어가며 찾던 직원은 표정이 계속 어두워졌다.

"잠. 잠깐만 학생"

직원은 당황한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뒤 부서에 있는 누군가랑 이야기를 했다.

경찰서에서 겪은 상황 같아 민수는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직원이 자리에 돌아와 말을 이어갔다.

“학생, 출생신고는 보통 출생증명서가 있어야 해요. 산부인과 기록이나 부모님 신분증도 필요하고요. 혹시 관련해서 서류 가져온 거나 집에 있거나한 게 있나요?”

민수는 손을 살짝 움켜쥔 채 대답했다.

“어… 없어요. 저희… 부모님이 없어요. 진우는 이 동네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계속 데리고 있었거든요”

직원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경계가 아니라,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 같은 표정이었다.

“아… 그러시면… 잠시만요.”

직원은 이면지 한 장을 꺼내 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없고 출생증명도 없는 경우에는 조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요. 출생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법원 확인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법원.’
민수는 낯선 단어의 등장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민수에게 법원은 그저 나쁜 사람이 죄를 받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마치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직원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일단 지금 상태에서는 출생신고를 할 수는 없고요. 부모 정보나 태어난 병원 등을 찾아서 하셔야 해요.”

직원은 한숨을 짧게 쉬고 말을 이어갔다.

"이게 미혼부... 그니까 아버지 혼자만 계시면 하는 절차인데 형제인 경우에는 저희도 이런 경우를 못 봐서... 일단 진우 학생 출생정보부터 찾아보세요."

민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진우는 옆에서 형의 손을 잡으려다 말고 다시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형이 긴장한 걸 느끼고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민수는 마지막 희망처럼 물었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건 뭐예요?
"오늘…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보시면 돼요.”

직원은 부드럽지만 단단한 톤으로 말했다.

말끝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깊숙하게 꽂혔다.

마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직원은 덧붙였다.

“다만… 법률 상담을 받아보시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혼자 처리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절차라서…”

민수는 머릿속에 스며들기 전에 이미 무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맙다는 말을 겨우 꺼냈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동사무소 밖 —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

문을 나서자 찬 바람이 민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이 춥지도 않은데 춥게 느껴졌다.

민수는 안내문을 땀에 젖은 손으로 구기듯 쥐고 있었다.

진우는 형의 걸음이 평소보다 느리고 무겁다는 걸 느끼고 조심스레 물었다.

“… 형.”

민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걸음만 옮겼다.

다시 진우가 말했다.

“형… 나… 어떻게 되는 거야?”

민수는 발을 멈추고 천천히 진우를 바라보았다.

진우의 눈동자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하는 아이의 표정이었다.

민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아니야. 형이… 방법 찾아볼게. 무조건.”

그 말은 확신보다 다짐에 가까웠다.
하지만 진우는 그 말 한마디에 조금 안도한 듯 형의 옷소매를 살짝 잡았다. 민수는 진우의 손을 감싸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에는 좌절, 책임감, 두려움, 그리고 아주 미약한 희망까지 모두 들어 있었다.

두 사람 앞에 처음으로 나타난 벽은 생각보다 크고, 차갑고, 높았다. 하지만 민수는 그 벽을 보며

조용히 마음속에 하나를 새겼다.

'진우를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5장 : 사라졌던 것들, 남아 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