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지 않는 방법

다 소용없어요

by 핫쩡

지난달 말, 2년 하고도 8개월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를 하고 난 후에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은 1. 어디로 이직해? 2. 엥? 갑자기? 였다. 그러나 이직이 아닌 단순 퇴사였고, 갑자기 충동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퇴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2년 7개월이 걸렸다.


솔직히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회사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종종 누릴 수 있었던 성취감과 좋았던 동기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중독성,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재택근무, 전세 대출의 연장의 도래 등이 꾸역꾸역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꾸역꾸역-


말 그대로 나는 꾸역꾸역 버텼다. 볼을 씹으며 버텼고, 불면증에 시달렸고, 심장이 뛰어 새벽에 잠을 깼던 적도 여러 번이었고,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다.


퇴사를 하지 않기 위해 했던 기행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퇴사를 입에 달고 사는 거였다. 매일 아침 동기들의 단톡방에 퇴사하고 싶어-라고 노래를 부르면 동기들은 나도 나도 하며 각자의 고충을 털어내고 회사 욕, 대표 욕, 상사 욕, 그리고 다니고 있는 회사를 지원했던 과거의 나 자신까지 욕하며 자조하고 웃었다. 그러면서 하나 둘 동기들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닉 하게도 실제로 퇴사를 가장 빠르게 하는 동기들은 퇴사하고 싶다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동기들이었다. 그래서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애들이 영 퇴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도 매일 퇴사를 입에 올렸다.

동기들 뿐 아니라 주변의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퇴사하고 싶다고 가끔 징징거리면, 이직할 곳 찾고 나와라, 그만두면 뭐해 먹고 살 건데, 코로나 시국이라 다들 힘들다는 소리를 해주었다. 나도 다 아는 이야기고, 다 생각해 본 걱정이지만 남의 입을 통해서 스스로를 한 번 더 말렸다.

두 번째로는 신용카드의 한도를 올렸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기나긴 할부로 갖고 싶던 물건을 샀다. 아이패드 프로를 산 날은 거래처와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 내 스트레스 한도가 신용카드의 한도를 넘어서겠다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6개월은 더 버텨보자 하는 마음으로 할부로 아이패드를 질렀다. 그러나 겨우 아이패드 할부는 돈이 생기면 금방 갚아버릴 수 있는 게 함정이다. 정말로 퇴사하기 싫었다면 자동차 정도는 구매했어야 한다. 그러면 아직도 나는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다행스럽게도 내겐 아직 면허가 없다.

세 번째는 일에 감정을 담지 않는 거였다. 9시부터 18시까지 무감정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이 힘들어서 라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해서 퇴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으므로, 감정을 죽이도록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위의 행동들은 퇴사의 시점을 조금 더 뒤로 미뤄주었을 뿐, 어쨌든 나는 퇴사를 하고야 만다.

막상 퇴사를 하니 후련하거나, 시원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다. 그냥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스트레스 지수가 조금 낮아진 덕분이다. 통장잔고가 바닥나기 전까지 당분간은 이 가벼움을 누려야겠다. 얼마 안 가 먹고사니즘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내가 눈에 선하다.


p.s. 퇴사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친한 오빠가 퇴사하지 않는 방법을 안다고 했다. 그건 바로 입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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