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프라이빗 온천을 예약해 놔서 근처인 서쪽으로 여행을 해야 했다. 고베와 해유관을 고민하다 민이가 수족관을 좋아하니 해유관을 선택했다.
이코카 카드 충전에 현금이 필요해 우메다역을 다시 헤맸다.
결국 이온 ATM 찾기에 성공해 하이파이브 한번 찐하게 했다. 미스터 도넛에서 커피와 도넛 한잔하고 어딘가에서 양산을 잃어버린 채 오사카코 역으로 향했다.
일본에 나름 익숙해졌다고, 한번 하는 환승 정도는 별 어려움 없었다. 여유 있고 느긋하게 바깥 경치 구경하며 50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해유관은 오사카코 역에서 좀 걸어야 한다. 물론 걸을만하다.)
메론 소다와 쫄깃한 도넛
해유관에 들어가는 길에 덴포잔 대관람차가 있다. 런던아이는 너무 비싸서 못 탔었는데, 덴포잔 관람차는 부담 없는 요금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서 바로 탑승했고, 관람차 내부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고 쾌적했다.
관람차와 관람차에서 바라본 풍경, 은근히 무섭다.
덴포잔과 반갑게 첫인사 후 바로 옆 쇼핑센터로 향했다. 건물 안에는 인파가 적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보단 견학 온 것 같은 일본 학생들이 더 많았던 거 같다.
간단히 둘러본 후 해유관 티켓 먼저 예매하고 점심 먹자라고 민의와 의견을 나눈 후 또 바로 옆 해유관으로 갔다.
티켓 구매한다고 바로 입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 대 별로 입장 티켓이 나눠져 있어서 점심 먹고 예매하러 왔으면 늦을 뻔했다. 다시 한번 하이파이브를 찐하게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몸이 조금 이상했다. 발바닥부터 으슬으슬한 게 포켓몬 장난감을 구경해도 도파민이 올라오지 않았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아프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다.
오사카 여행 중 가장 맛없던 우설 도시락 식당에서 점심 먹던 중 아프다는 걸 민이에게 결국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약국이 쇼핑몰 안에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난관이 있었다.
진통제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먹지 못한다. 타이레놀을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복용하면 머리와 얼굴 그리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도 아프다. 보통 아세트아미노펜이 부작용 없다고 하는데 나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부루펜으로 알려진 이부프로펜 감기약만 먹을 수 있는데, 약 설명을 읽어보려 해도 열심히 외웠던 일본어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민이가 열심히 파파고로 번역해 보고, 익숙지 않은 일본어로 문의해서 결국 약 두 개를 샀다.
다행히 알레르기 부작용이 없었다.
아직 수족관 구경도 못했고, 예약한 온천도 못 갔는데 아프다는 게 너무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 내일 그리고 모레의 여행도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기대에 찬 민이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었다.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니 머리와 목은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나는 리더와 거리가 멀지만 민이는 좀 더 멀다. 내가 쉬자고 했으면 민이는 아무 아쉬움 없이 '쉬면서 회복하자' 했을 것이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자 했으면 또 그럴 것이다.
약간 서운한 속 좁은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감기는 내가 걸렸고 오히려 피해와 영향받는 건 민이니 내 잘못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쳐 먹었다.
내 몸이니 내가 잘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벤치에 앉아 약 먹으며 한숨 돌리며 어찌할까 고민했다.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지우려고 노력하며 홍삼 비슷한 음료와 함께 감기약을 먹고 나니 속에서 돌던 몸살기가 좀 가라앉은 것 같았다.
해유관에 입장해 라커에 무거운 가방도 맡기고 시원한 곳으로 들어오니 버틸만했다.
졸고 있는 물범? 쟤는 벽에 저렇게 숨어 있다.
구경 안 했으면 아쉬울 뻔했다. 민이는 넋 놓고 구경 했다.
처음엔 몰랐지만 큰 원형 수조를 중심으로 빙빙 돌며 내려가게 되어 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과 또 달랐다. 어디가 좋고 안 좋고 가 아니라 느낌 자체가 달랐다. 사람들은 적지 않았으나 구경하기 어려울 만큼은 많지 않았다. 넉넉잡아 두, 세 시간이면 다 구경할 수 있다. 귀여운 고래 인형고리 하나 사서 덴포잔을 떠나 소리 나와 온천으로 향했다.
대빵 큰 상어와 귀여운 만타인, 펭도리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면 소라니와 온천이 있는 벤텐초역으로 갈 수 있다. 온천에서 편히 쉬면서 회복하자고 민이와 이야기하며 오니 금방 도착했다. (우메다로 돌아가는 길 중간이기도 하다.)
입구부터 잘 꾸며놨다는 느낌이 들었다. (컨디션 난조로 사진을 못 찍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한국의 대형 찜질방 같다. 하지만 찜질하는 곳은 없고 식당, 사진 찍기 좋은 곳, 쉼터 등등이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일본의 정원같이 꾸며놨다. 발을 담글 수 있는 탕도 곳곳이 있는데 컨디션이 좋을 때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이빗 온천은 8,000엔 정도 지불하고 미리 예약했었다. 90분 사용할 수 있는데 저렴하진 않다. (입장료는 별도다.)
온천으로 유명한 아리마나 기노사키를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먼 걸 보고 포기 했었다.
료칸을 가자니 마땅히 마음에 드는 곳은 없고, 첫 일본 여행이니 맛만 보자는 생각으로 예약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서니 깔끔하고 시설도 분위기도 좋았다.
슬슬 약 기운이 떨어져 가는지 몸살기가 다시 올라왔다. 뜨신 물에 적시면 좀 나아질까 싶어 몸을 담갔는데 열이 더 오르는 것 같아 탕에서 나왔다. 앞으로 열날 때 찜질이나 열탕은 금지다.
나 대신 민이라도 마음껏 즐기라고 맥주와 닭튀김을 사서 탕에 갔다 줬다.
밖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 테니 내 몫까지 즐겨 달라고 했다. 정말 잘 즐기는 것 같았다.
그나마 마음이 한결 놓아졌다.
탕이 있는 야외엔 여름 비도 내리기 시작하고, 뜨거웠던 태양도 저무니 운치가 정말 좋았다. 가족끼리 온다면 추천이다.
프라이빗 온천 입구와 내부, 그리고 탕
빌빌 거리며 우메다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뻗어서 약 먹고 끙끙 앓며 잠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선과 무더위에 즐기기 좋은 하루 일정은 완벽했지만 내가 문제였던 하루였다.
아무리 좋고 행복한 곳에 있어도 건강이 말썽이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정말 미안했다. 나와 동행자를 위해서 건강 관리도 여행 중 신경 써야 할 부분이란 걸 체득한 색다른 귀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