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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일상 - 한 여름의 일본 여행 편 5

다섯째 날, 교토에서

by 완소준

열 때문에 새벽에 깨다 잠들다 반복하며 밤새 끙끙 앓고 일어났다. 아직 목이 칼칼한 게 불안 하긴 했지만 어제보단 나아졌음이 느껴졌다. 정말 말 그대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컨디션이 좀 괜찮아져서 교토에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슴 보러 나라 공원 가는 건 좀 무리일 것 같다고 민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당연히 무리하면 안 된다고 기대하던 사슴 구경을 깔끔하게 포기하는 민이에게 고마웠다.

천천히 씻고 짐을 싸고 나와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며 우메다와 작별인사 했다.

며칠 있었다고 정들기도 했고, 우메다에서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아 아쉬웠다.


우메다에서 전철 타면 한 번에 교토로 갈 수 있었다, 무슨 노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메다역에서 환승 없이 5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가라스마역에서 내리면 된다.

마스크를 꽁꽁 끼고 오사카 북쪽으로 넘어 나가는 전철의 푸른 창 밖 구경을 하다 잠깐 잠들었다. 정신 차려 보니 전철은 지하철이 되어 지하에 있었고, 곧 가라스마역이었다.

짧지만 나름 푹 잤는지, 점점 괜찮아지니 무너졌던 멘탈과 함께 회복된 건지 아침보다 훨씬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캐리어가 하나 있었기에 역에서 예약한 호텔로 먼저 이동했다.

숙소는 역에서 가까웠고 기대 이상 이었다. 경비 아끼겠다고 포켓호텔을 예약했었다. 그래서 애당초 기대감이 하나도 없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모던하면서 깔끔했고, 체크인 전 후에도 인포에서 빌린 자물쇠로 캐리어를 맡길 수 있었다.


약을 미리 먹고 숙소 바로 뒤 니시키 시장으로 향했다. 외국인들로 엄청나게 붐볐다. 교토 추천 유튜브 몇 개 봐보니 경치 좋은 스타벅스가 있다길래 거길 먼저 가보기로 했다. 붐비는 골목을 지나 더 걸어 들어가니 식당과 매장들이 쭉 있었다. 시장은 아닌데 마치 시장처럼 위에 천장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덥지도 않고 인파도 많지 않아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 좋았다.


라멘을 한 번도 먹지 못했고 뜨뜻한 국물을 먹으면 감기 기운이 좀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근처 라멘집을 찾아 들어갔다. 정말 좁디좁았고 전부 일본인들이었다. 나는 라멘, 민이는 츠케멘을 시켜서 먹었는데 국물이 진하다 못해 진득했다. 상상했던 라멘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지만 민이는 또 맛있게 먹었다. 좌우를 슬쩍 돌아보니 나 빼고 다들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맛이 다른 거겠구나 생각을 고쳐 먹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구경할 게 정말 많았다. 시장 안에 보세 브랜드 가릴 것 없이 매장들이 모여 있으니 구경하기도 좋고 일본 스트릿, 아메카지, 스포츠, 소품 좋아하는 게 다양하게 있으니 눈이 돌아갔다. 소품 말고는 딱히 쇼핑에 관심 없는 민이에게 스트릿 푸드를 쥐어주며 집중을 돌린 후 쇼핑과 함께 스타벅스로 천천히 향했다.


그리고 빠칭코장이 틈틈이 보였다. 민이와 나 겁쟁이 둘은 밖에서 알짱거리면서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결국 용기 내어 만 엔 정도 들고 빠칭코 머신에 앉았다. 좌우 할머니 할아버지들 몰래 눈치 보며 어떻게 하나 염탐하다가 우리도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실력과 행운이 함께 해야 한달까. 적당한 파워로 구슬을 넣는 것도 중요하고, 행운과 함께 숫자가 맞는 것도 중요했다. 둘 다 미진한 (가끔) 바보 같은 우린 강원랜드 에서와 다를 거 없이 기약 없는 복수를 다짐하는 패배자의 모습으로 빠칭코장을 나오게 됐다.

1. 우메다에서 조촐한 민이의 아침 2. 아무렇게나 들어가서 먹은 색다른 라멘과 츠케멘 3. 몰래 찍은 빠칭코

우여곡절 끝에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가모 강이라는 작은 강 앞에 있는 스타벅스인데, 니시키 시장과 상가 거리를 구경하며 오기 딱 좋다. 살짝 더운 구간이 있긴 하지만 오는 내내 그늘로만 올 수 있어 더위에 지치지 않았다.

강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이 인기 많은데 시간제한이 있다.

날이 더워 오래 앉아 있을 순 없어 십분 정도 경치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와 쉬었다. 우린 여름의 풍경 밖에 눈에 담지 못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모습 전부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1. 시장길을 나와 스타벅스로 걸어가는 길 2. 스타벅스 교토 산조 오하시점 3. 스타벅스 테라스에서 찍은 가모 강

시장에서 해산물을 먹고 싶다는 민이의 바람으로 다시 시장 근처로 돌아가 괜찮아 보이는 가게에서 해산물 군것질을 했다. 길거리 음식 치고는 가격도 좀 있고 퀄리티도 좋아 보이지 않긴 했다. 하지만 민이는 맛있게 먹었으나 마음속으론 괜찮은 식당을 찾아 교토에서의 저녁 만찬을 함께 즐겼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시장에서 한 군것질

호텔로 들어와 체크인을 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제공해 주는 반팔과 반바지를 받았고 프라이빗 룸이라고 작은 방에 2층 침대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4만 원 정도 한 것 같다.)

방도 침대도 깔끔했다. 공용 화장실과 공용 샤워실도 한번 다녀와봤는데 쾌적하고 샤워실도 다 분리되어 있었다. 여긴 다시 와도 좋겠다고 생각한 몇 없는 숙소였다.

숙소 투어를 마치고 1박 일정의 교토가 아쉬워 저녁 풍경을 구경 가기로 했다. 구글지도와 로비에 있는 관광지 추천을 보며 고민하다가 버스 타고 산넨자카로 가기로 했다.


해산물 군것질한 배가 아직 꺼지지 않아 직장인들이 줄 서 있는 오니기리 가게에서 간단히 먹고 목적지로 향하던 중 손수건 가게가 너무 이뻐 홀린 듯 할머니 선물로 손수건을 샀다.

버스를 타고, 퇴근 시간의 교토 거리와 기사 아저씨가 매 정류장마다 직접 역 안내를 해주는 모습을 구경하며 금세 산넨자카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져서 어둑어둑하고 함께 하루가 끝났는지 캄캄하고 조용한 길을 따라 올라가며, '아 또 망했구나' 싶었을 때 구글에서 보던 풍경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상점들은 거의 다 영업을 마무리하고 닫혀 있었지만 나름의 분위기가 좋았다.

사람들도 바글거리지 않았다. 다만 여기가 무엇인지, 보이는 저 건물은 뭔지 좀 알고 갔다면 좋았을걸.

사람이 적지도 많지도 않다. 저기 보이는 불탑과 초승달이 기묘했다.

호칸지라는 불탑을 바라보며 골목 뒤로 내려가다 보면 야사카 신사가 나온다. 여름밤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길 근처로 신사 뒷 출입구가 나온다.

등을 들고 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컨디션 저하로 다시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 포기하고 사람도 등불도 빼곡한 신사 가운데로 가서 구경했다. 여기저기 작은 신사들도 있었는데 일본이 많은 기업들이 후원하고 봉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야사카 신사의 매력은 정문 출구로 나설 때인 것 같다. 교토의 메인 거리(내 생각으론)가 정문 앞으로 쭈욱 펼쳐진다. 이 신사의 주인은 얼마나 좋았을까. 교토의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1. 야사카 신사 뒷문!? 2. 야사카 신사 가운데 3. 신사 정문에서 바라본 교토 거리

슬슬 팔다리가 무거워져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민이에게 말한 후 천천히 돌아갔다.

하루만 더 푹 자면 나아지겠다는 생각이 드니 팔다리가 몸살기로 살살 욱신거려도 버틸만했다.

가지런한 교토의 밤길을 걸어가며 낮에 봤던 파랗고 푸르던 강도 다시 구경했다. 채 한 시간 떨어져 있는 오사카와 다른 고즈넉한 교토의 매력을 느낀 하루였다.

오사카 여행 중 교토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교토 여행을 위해 오사카를 들러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 어딘가 매달려 있던 풍경(소리)


마무리

우메다 -> 가라스마 -> 니시키 시장 -> 가모 강 근처 -> 산넨자카 -> 야사카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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