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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05. 2021

우리는 이럴 때 결혼을 확신한다.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만약 이혼하면 가전 가구는 어떻게 나눌까?”    


남편이 꺼낸 소리다. 거기에 나는 심드렁하게

“이혼할 일 없으니까, 쓸데없는 상상은 접어두슈.”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이혼을 상상했다. 이혼을 상상한다는 거, 그 자체가 그에 대한 복수다. 내가 없으면 우울하겠지. 밥도 잘 못 먹을지도 몰라. 더 잘해줘야지. 내가 없으면 허전하게, 가전 가구는 어떻게 나눌까. 좋은 건 꼭 내가 가지고(tv, 냉장고, 세탁기) 별로인 건 남편 (식탁, 전자레인지) 줘야지. 이기적이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상상은 이기적이어도 되는 거니까.     






 남편은 사람을 만나거나, 뛰거나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 늦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누워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주말엔 남편이 항상 먼저 깬다. 나는 혼자 잠들어 있다. 남편은 내가 잠들어 있는 걸 싫어한다. 잠들어 있는 나를 툭툭 건드리고 말을 건다. 그러다 이내 내가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옆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연애를 시작한 지 2년 째, 그에게 결혼에 대해 물었다. 


"나는 자기랑 결혼하고 싶어."

“넌 뭘 믿고 나랑 결혼하자는 거야?”


“글쎄… 뭘 믿는다기보다.. 너니까 하고 싶어. 헤어지기 싫으니까.”


그는 그런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잘 생각해봐. 그냥 시기가 돼서 결혼이 하고 싶은 거면, 나는 결혼에 대해 확신이 필요해.”   

     

이 남자가 기다리는 확신이 도대체 뭘까.

확신이 오긴 올까. 종소리라도 들리길 바라는 걸까. 정말 귀에 대고 종이라도 치고 싶었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선전포고를 했다.      

  

“정확히 일주일 시간을 줄게.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면 연락하고, 그때까지 확신이 안 들면 연락하지 마. 더 이상 너한테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    

            

그렇게 나는 그에게 이별 아닌 이별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는 일주일을 꽉 채운 뒤, 연락이 왔다.  

  

“결국 너랑 결혼할 거라고 했잖아.” 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첫 데이트 장소는 신림동에 있는 순대타운이었다.                

신림동 백순대를 유난히 좋아했던 우리는, (아니 어쩌면 나만) 약간은 지저분한, 흔히 말하는 사람 냄새나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했다.  

   

은색 철판을 가운데에 두고 기름기가 묻어있는 의자를 슥슥 닦은 뒤 앉아 후덥지근한 공기와 마주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자연스럽게 술 한잔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에 모든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주 한 병을 시킨 우리는 근황 정도를 묻고는 의미 없는 이야기들은 이어나갔다.

주말에 뭐했는지, 왜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나누다 그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                

“사실 이런 가게는 1인분만 시켜도 돼.”       

             

“둘이 왔는데 1인분이 무슨 소리야. 인수대로 시켜야지.”                

이런 행동 자체가 민폐라고 생각했던 나는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은, 돈 없던 시절에는 1인분만 시켜서 소주랑 같이 먹고는 했었어. 순대타운은 그런 곳이었다고. 이모님들한테 순대 많이 달라고 하면 2인분 같은 1인분을 주셨었지.”      

            

옛날 일을 상상하듯 그는 몽롱한 표정을 짓더니 말리기도 전에 1인분을 시켰다.  

               

“1인분만 주세요. 순대 많이 부탁드려요.”   

             

그의 말처럼 2인분 같은 1인분이 나왔다. 나는 그런 행동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그가 하니 그렇게 많이 미워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진짜 콩깍지라도 씌었었나 보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시킬 수도 있지.'  그렇게 그에게 홀리던 순간이다. 아마 나는 그때 결혼을 확신했던 것 같다.    

                  

결국,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결혼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어이없는 이유를 나열하며

나도 모르게 그의 옆에 있는 것.

결혼을 왜 했어요?

무슨 확신이 들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혼 후 남편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때 내가 신림동 순대타운을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러게. 1인분만 시키는 거 어이없었는데. 진짜 괴로웠어."  


그는 사악하게 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미소-)   

“나는 너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거야.”라고 말한다.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호캉스를 하자고 말했다. 웬일로 소공동에 있는 롯데호텔을 데려가더니 아침에 조식을 먹고 갈 곳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선 나를 종로구청에 데려갔다. 그렇게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조식을 먹고 배부른 틈을 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더니 한순간에 나를 유부녀로 만들었다.

이 남자는 나를 참 잘 안다.

                

결혼은 그런 것 같다. 이혼을 상상하며 복수를 꿈꾸지만 같이 사는 우리처럼. 서로 싫어하는 행동을 해도 옆에 있어주는 것.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사이. 그런 일들의 연속. 그렇게 헤어질 수 없는. 그렇게 계속 옆에 있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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