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박이 Sep 08. 2021

남편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게 불공평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생일날 아침에는 엄마가 차려주는 미역국과 불고기를 먹었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결혼을 한 뒤, 처음 맞이하는 남편의 생일날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연애를 할 때도 생일은 챙겨줬지만, 결혼 후 처음이니까 꼭 챙겨주고 싶었다. 둘만의 생일 문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나도 미역국과 불고기를 해줘야지,라고 생각하며 흥얼거렸다. 그렇게 쇼핑을 하고, 나름의 서프라이즈 파티를 계획했다.

 나는 하나를 집중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편이다. 레시피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는데, 생일만 신경 쓰는 나를 보곤 남편은        


 “나를 더 신경 쓰라고. 생일이 뭐라고.”라고 말했다.       


 투덜거리는 남편을 보니, 내가 재밌으려고 준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특별한 날도 아닌데 호들갑이라고 말한다. 그래 놓고 내가 챙겨주면 무조건 좋아할게 뻔하다.






 “무슨 선물 가지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무슨 선물이든 제발 맘대로 사지만 마!”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항상 나에게 필요한 게 있냐고 물어보고 선물을 해주는 편이고, 나는 내가 주고 싶은 선물을 준다. 어디서 본 내용이었는데 주고 싶은 선물을 주는 사람은 이기적 끝판왕이라고 한다. 변명을 하자면 가지고 싶은 게 뭔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아서다.     

 나는 그가 필요한 걸 유추할 뿐인데, 예를 들어 6개월 전에 지나가는 말로 “축구화 종류가 너무 많아서, 그래도 하나 필요하긴 하지.”라고 말하는 혼잣말이나 “지갑이 이래서야.”라는 푸념에 가까운 고백을 귀담아듣는다.           

 그리곤 선물을 해버리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질색팔색 하며    


 “아! 왜... 맘대로 선물했어!”라고 말한다.    


 “솔직히 내가 맘대로 선물해줘서 좋았지?”라고 말하면 다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신중한 사람이라 계획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번은 최저가를 검색해서 결제하라고 알려줬는데 꾸물거리다가 놓친 적도 있고, 가드링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혼식이 끝난 후에 사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결정은 내가 해줘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남편보다는 결정이 빠르니까 이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결정할 때마다 남편은 제발 맘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말한다.      






 영화 <애니 홀>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죠.

 '형이 미쳤어요.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말했죠.

 '형을 저한테 데려오지 그래요?'

 나는 대꾸했죠.

 '그럼 계란을 못 낳잖아요.'     


 남녀 관계도 이런 것 같아요.

 비이성적이고 광적이며 부조리해요.

 하지만 우린 계속 사랑을 할 거예요.

 우리에겐 계란이 늘 필요하기 때문이죠.     


 또한 영화 <애니 홀>에서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관계란 건, 어찌 보면 상어랑 좀 비슷한 거 같아. 끊임없이 전진하지 않으면 죽는 거지.






 집 앞에는 호수 공원을 낀 긴 산책로가 있다. 신혼집을 이곳에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는데, 물가에서 놀고 있는 오리가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종종 산책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은 뛰지 않을 거면 함께 산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 역시 걷지 않을 거면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몇 번 남편은 혼자 산책을 나갔다. 집에 혼자 있다 보면 몸도 찌뿌둥하고 따분하다. 그래서 결국 남편을 따라 산책로를 나가게 되었다. 같이 나가면 함께 걷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는 함께 걷자고 말하는 나를 남겨두고, 혼자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걷기와 달리기를 선택하자면 나는 걷는 쪽이다. 하지만 남편은 달리고 싶어 한다. 퇴근하고 저녁에 같이 손을 잡고 밤바람을 쐬면서 산책하고 –오리 가족도 찾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남편은 운동을 한다. 남편이 사라지고, 그렇게 혼자 걷다 보면 이상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주로 남편에 대한 것이다. 내가 걷자고 해도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뛰지 않는 것일까. 남편은 고집이 왜 이렇게 셀까. 나는 왜 그럴까. 이런 생각들이다. 그러다 보면 산책하기가 싫어진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밖돌이었고, 나는 집순이였다. 내가 집에서 뒹굴거리면 큰 병에 걸린 것처럼 걱정했다. 집에만 있는 나를 보곤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집돌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는데, 나 같은 사람이었다면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집으로 데이트를 가려나, 누가 갈까. 벌써 어렵다.


 다행히, 남편은 외향적인 밖돌이라 나를 밖으로 잘 끄집어낸다. 반대로 나는 남편을 집으로 잘 끌어들여서 쉬게 만든다.      


 아주 가끔 남편이 먼저 산책을 나가자고 물어보면 나는 집순이임에도 불구하고 곧장 “응.”이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난다. 같이 산책하고 싶으니까. 아쉬운 쪽은 나다.


 “혹시 달려야 할까?”라고 겁을 내는 나를 보며

 “달리면 같이 걸을게.”라고 회유한다.     


 “손잡고 걸을 거야?”

 “응”

 “오리가족 찾을 거야?”

 “응.”     



 


 결국, 난 남편의 손에 이끌려 아니, 이끌린 척 같이 산책을 나간다. 호수공원 산책로엔 사람이 많다. 걷고, 달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남편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싶어서, 눈을 꽉 감고 냅다 달린다. 그렇게 걷고 뛰다 보면 어느새 손을 잡고, 투닥거리고 있다.

 남편은 커플 러닝화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하다가, 러닝의 효과에 대해 한참 말한다. 듣는 둥 마는 둥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오리가족을 찾는다. 오리 가족을 발견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잠시 구경하면 다음에 또 보자, 집에 가자고 재촉한다.


 그 와중에도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러닝화 필요함.’


 남편이 말한 말 중 이상하게 이런 류의 것들만 머릿속에 콕 박힌다. 잠시 생일 선물 리스트들을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모든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65일 남편 생일선물을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같이 산책하려면 뛰기까지 해야 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남편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게 불공평하다.

이전 04화 우리는 이럴 때 결혼을 확신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