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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03. 2021

"가족끼리 왜 이래..."

나는 자주 그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한다.


 나는 자주 그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말한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는 아침에 정신이 없다.

 일어나서 물 한잔, 이를 닦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남편이 부스스한 까치집 머리를 하고 일어나 (이 모습이 귀엽다.)

 나처럼 물 한잔, 이를 닦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 타이밍에 나는 출근 준비를 끝내고 신발장에 서 있는다.

   

 “나 간다!”     


 그러면 남편이 화장실 안에서 소리친다.


 “어! 조심히 다녀와!”     


 나는 이내 아쉬운 맘에 신발장에 우두커니 서서 소리친다.


 “뽀뽀해줘!”    


 남편은 그럴 때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말한다.




 결론은 지금은 바쁘니 뽀뽀 불가라는 소리다.     

 화장실 문을 보며 생각한다. 아쉽다. 화장실 문을 멍하니 쳐다보다 현관문을 나선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잘 잤어?”라는 말을 잘 안 하게 되었다.

 옆에서 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어서 그런 건지 “요즘 코를 좀 골더라. 많이 피곤한가 봐.” 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안부를 묻는다.     


 이처럼 결혼 후 잃어버린 것들이 꽤 있다. 뽀뽀 횟수를 많이 잃어버렸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안부를 자주 생략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 적응이 되고 있는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     




 남편과 연애 초, 부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부산역 앞 감자탕 집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하시는 대부분이 오래된 커플이나 부부처럼 보였는데 종알종알 떠들던 우리와는 다르게 다들 조용히 식사만 하셨다.

  

 개그콘서트에서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를 했던 기억이 났다. 가족끼리 대화를 하지 않아 상황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 개그의 포인트였다. 20년 가까이 살아온 부부가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른다. 남편 역을 맡은 개그맨 김대희 씨는 “밥 묵자.”만 2년 내내 말하며 개그를 이어갔다.

 감자탕 집에서 나는 진짜 <대화가 필요해>를 봤다.

   

 그때 그는 뼈를 발라 살코기를 나에게 주고 있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중에 우리도 대화 없이 밥 먹게 되는 날이 올까? 너무 싫을 거 같아.”라고 말했었다.    




 그런 우리도 지금은 가끔 대화가 없다. 어느 순간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딴짓을 한다. 그러다 감자탕 집에 있던 다른 부부들의 모습이 우리와 겹쳐 보인다. 그럴 때, 화들짝 놀란다.    


 우리도 점점 결혼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변해가는 걸까.

나도 결혼한 여자들처럼 익숙함에 길들여지나.    


 남편은 함께 산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말했다.

 쌈을 싸서 먹여줘도 “가족끼리 왜 이래.”

 뽀뽀를 요청해도 “가족끼리 왜 이래.” 등등    


 그 말을 들었을 때 참 기분이 묘했다. 가족이 되고 싶은 건 맞았는데 남편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싫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큰 바퀴벌레가 있었다.

 우선 바퀴벌레 사진을 찍고 남편에게 연락했다.     


 “여보! 빨리 와! 집에 엄청나게 큰 바퀴가 있어!!”    


 그러자 그는


 “어? 그거 아침에 봤던 거 같은데, 도망간 줄 알았더니 아직도 있네?”라고 말했다.


 “여보 보이면 얼른 잡아야지! 여보 나 진짜 너무 무서우니까 얼른 와서 잡아줘!” 내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러자 남편은

 “아 나도 무서운데.. 우선 기다리고 있어!”    


 이처럼 큰 벌레는 그에게 양보한다. 가족이 된 거와 별개로 여자로 남고 싶은 발버둥이다.

 소주를 딸 땐, 꼭 남편을 시킨다. "술병은 여자가 따는 게 아니래." 와 같은 진부한 대사를 친 채.

 그에게 넘긴다. 여자로 남기 위한 그런 류의 것들.    






 남편은 빨래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꼭 본인 속옷만 정리하지 않는다.

 본인 속옷이면서 꼭 나의 할당량을 남겨둔다.     

 어느 날은 정리를 해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한 동안 접지 않은 속옷 더미에서 속옷을 꺼내 입었다. 그러더니 나한테    


 “이것 좀 치워라. 언제 정리할래?”라고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내가 자기 하녀인 줄 알아? 청소부야? 본인 건 스스로 치우슈.” (맘에 안들 땐 건달 말투를 쓴다.)

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가 한동안 시무룩했다. ‘내가 정리해 준 속옷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러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도 그런가 보다. 남자와 가족 사이에서, 나의 소주병처럼 속옷을 내가 정리해주면 남자가 되는 것 같나 보다.  

  



 여자와 남자로 살고 싶다. 결혼생활이라는 익숙함이 주는 장점도 반드시 있지만, 편안함으로 인해 잃어버린 상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난 그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한다.

 퇴근을 하면 그와 꼭 뽀뽀하리라. 나를 가족으로 만든 것에 대한 벌이다. 그렇게 그와 입을 맞추면 우리는 잠시 남과 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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