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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01. 2021

같은 공간, 다른 우리

사랑이 식어버린 걸까요?

 영화 <블루 발렌타인>에서 여주인공 신디는     

 

 “엄마, 아빠처럼 되긴 싫어요. 한때는 서로 사랑했겠죠? 절 낳기 전에. 사랑이 식어버린 걸까요? 사랑이 그렇게 사라지는데 감정이란 걸 어떻게 믿죠?”라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 사는 다른 두 사람이 있다. 달달한 신혼이 지난 그들은 언제 좋아했었냐는 듯 사랑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대화를 단절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로맨틱해요. 남자는 이 여자다 싶으면 올인하지만, 여자는 이것저것 따지다가 결혼하니까요.” 남자 주인공 딘이 한 말이다.      





 운영하는 문화공간 정담화에서 영화를 보고 만나 토론을 하는 시간이 있다. 남편이 된 그와 난 결혼 전 영화를 보고 난 뒤, 한참 동안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봤다는 것이고, - 여자가 너무 못됐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여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하며, 남편에게 그 마음을 모르겠냐고 되물었었다.     

 남자 주인공 딘이 한 말과 별개로 난 그냥 이 남자다 싶어 결혼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부족한 부분마저 나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서 보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신중할걸. 가끔 후회되는 부분이지만.     


 물론, 결혼은 신중해야 한다.

 그 증거로 프랑스에서는    

  

 ‘남자는 자유를 잃을 각오를 하고, 여자들은 행복을 빼앗길 각오를 하는 제비뽑기가 바로 결혼이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예로 이스라엘에서는   

   

 ‘토지를 매매하거든 얼른 서두르고, 결혼할 때는 최대한 여유를 둬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족이 아닌 - 물론 가족도 잘 맞지는 않지만 - 사람과 사는 건 커튼 색을 바꾸고 싶은데 다시는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벽지가 맘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유행이 지나도, 때가 타도, 벽지를 바꿀 수 없는 그 기분.


 함께 살기 시작하면 얼마나 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실감한다. 당신이 알던 나, 내가 알던 당신의 모습은 일부일 뿐이고, 그와 그의 가족, 나와 나의 가족이 합쳐져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며 혼미한 생활이 계속된다.     


 제일 먼저 결혼한 친구 다나는 치약 짜는 방법부터 밥 먹는 것까지 싸울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었다. 나는 믿기지 않았기때문에 매번 진짜?냐고 되물었고, 그녀는 진짜야!라고 말하며 결혼을 최대한 늦게 하라고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는 서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주 달랐다. 처음 시작은 아마도 그였을 것 같은데 – 요상한 나의 젓가락질을 고치라고 - 했었고, 무언가를 바꾸라는 그의 말에 반격하듯, 그에게 설거지는 바로바로 해달라고 말했었다.   


 

 그 상태로 나는 젓가락질을 고치지 않았다. 그도 설거지를 항상 제때 안 해놨는데, 어느 날 설거지를 계속하던 나는 화가 나 갑자기 엉엉 울어버렸다. 신혼 초라 아직 고무장갑도 없었고, 설거지를 계속하는 내가 (내 손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정말 앞 뒤 없이 “나도 고무장갑이 필요하단 말이야!”라고 말했는데


 그가 “자기가 필요하면 사면되지. 그걸 나보고 사달라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블루 발렌타인>을 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가 떠올랐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내가 설거지 그때그때 해놓으라고 했잖아!

와이프가 계속 맨 손으로 설거지하는 걸

신경이라도 썼다면 고무장갑이라도 사 왔겠다!”


 여기서 내가 생각한 올바른 정답은


 "괜찮아? 내가 사 올걸 그랬다!"였다.

   

 정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그때 우리가 소통의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종류의 싸움이 몇 번 지나갔다.   

   

 어느 날은 그가 나에게 떨어진 머리카락을 좀 주으라고 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지나가는 걸음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집에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거슬리는 사람이 치우라고 빼액 소리를 질렀고, 남에게 시키기만 하는 이기주의자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 순간 귀를 막았다.

      




 “서로 얼굴을 보면 화가 나니, 천장을 보며 대화하자.” 남편이 나름 생각했던 솔루션이다.

     

 우리는 침대에 누웠고, 천장을 쳐다봤다. 눈물이 뚝뚝 나왔다. 그 순간은 너무 불행했다.

자유롭지 않았고, 답답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싸움에 대해 딱히 신나게 말을 안 하는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지긋지긋하게 싸우는 사적인 영역을 누구한테 말하리.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우는 나도 그도 매번 현타가 온다.     


 부장님은 집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일부로 야근을 하신다던데, 미혼들에게 최대한 결혼은 늦게 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간혹 나는 남편의 다리를 베고 누워 그의 배꼽에 손가락을 넣는다. 그럴 때 그는 나를 살짝 한심한 듯 쳐다보지만, 이내 핸드폰을 보며 가만히 있는다. 손가락을 한번 넣었다 빼고, 배를 만지고 다시 한 번 넣다가 기분이 좋아져서 침대를 데굴데굴 구르면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냥 기분이 좋아. 무언가 나만 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


 남편은 가끔 당직을 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 침대를 하필 킹사이즈로 했을까 후회한다. 남편이 없는 침대는 너무 넓고 차갑다. 남편이 없는 날엔, 작은 소음이 필요해 TV를 틀어놓고 잠이 든다. 그리고 몇 번이고 잠을 깨면 혼자 잠들다 깬 내가 있다.     

 

 남편이 아침 일찍 돌아오면, 보자마자 나에게 잔소리를 할 테지. 우리는 또 같은 이유로 싸우겠지만, 그래도 옆에 달라붙어 있어야지. 이해가 안 되는 소리를 해대겠지만, 배꼽에 손가락을 넣어봐야지. 우린 또 소통에 문제가 있겠지만 아마도 천장을 보고 누워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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