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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07. 2021

닭다리 그까짓 꺼, 안 먹어도 괜찮다.

"당신은 나를 하나도 몰라."

 우리는 가끔(아니 자주) 치킨을 시켜먹는다.

 둘 다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고, 저녁을 하기 귀찮은 날에는 치킨만 한 것이 없다.

 종류도 어찌나 다양한지 모른다.

 간장 맛, 허니 갈릭소스 맛, 매운 양념, 트러플 핫 소스 맛 등등.


 다양한 치킨을 맛보면 새삼 놀란다. 우리가 어느새 빠른 속도로 이 많은 걸 다 먹었다는 사실에.     

 





 남편은 어느 날 나에게


 “닭다리를 양 손에 들고 우걱우걱 먹어보는 게 소원이야.”라고 말했다.

 

 아무튼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치킨을 시킬 때마다 그에게 닭다리를 양보했다.

 나도 닭다리를 참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난 좋아하는 부위가 많다.

 날개도 좋아하고, 부드러운 살점도 좋아한다.

 남편처럼 소원이라고 말하고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니까 닭다리, 그까짓 꺼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단지 닭다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기한테 주는 건지 알았다고 했다.


 물론 나도 - 미치게 닭다리를 좋아한다고 – 말한 적은 없다. 그냥 쿨한 척하며 담백하게 닭다리를 넘겨줬었다.

     

 그 결과, 남편은 내 옆에서 닭다리 전부를 당연하게 먹고 있었다.


 “여보가 닭다리 양 손으로 들고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준 거야. 나도 닭다리 좋아해. 자기는 말 안 하면 모르더라?” 

나의 쿨한 척은, 진득한 뒤끝으로 올라왔다.


 당황한 그는 민망한 듯이 닭다리를 건넸다.


 “그때 그냥 장난으로 말한 거였는데.. 진즉 말하지! 여기 얼른 먹어.”




 


 남편은 가끔 이중언어를 쓴다.


 대표적인 것으론 “괜찮아!”가 있고,

 물이 좀 필요할 땐 “목이 좀 타네?”라고 말한다 든지, 싸움이 고조되면 “맘대로 해!”

 가끔은 “이제 끝이야!”라고도 외친다. 때론 철인처럼 “나는 원래 하나도 안 아파!”와 같은 말도 한다.

   

 나는 끝까지 모른 척을 하다가 한 번씩


  “혹시 이중언어야?”라고 물어본다.


 이중언어는 내 전문 분야라서 사실 모를 순 없다. 하지만 난 일부로 모른척한다.     






 남편은 매사 불리한 일이 생기면 어느 순간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해맑게 웃어버린다. 그리고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웃으면 봐줄걸 아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가짜 웃음'을 조심하라는 '가짜 웃음 주의보'가 발동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속으론 이미 화가 풀린다. 웃음은 그의 엄청난 무기다.

 저 웃음에 몇 번을 속았는가. 나는 그가 교활하다는 생각을 한다. 미소에 취약하다는 걸 잘 알면서 그 점을 이용해 불리한 순간을 빠져나가니까.

 닭다리도 어느 순간 그에게 당하고, 언제나처럼 억울해하고 있다. 취약하다는 것을 들킬 수 없는 나는 B사감처럼 겉으론 냉정을 유지하는 척하며, 오목조목 조리 있게 마음을 설명한다.  






 내가 남편의 이중언어를 탐색하고 탐구하는 것처럼 그도 나를 탐구하길 바란다.


 생각해보면 남편도 나를 관찰하고 탐구하긴 한다. 예를 들면 눈을 뜨자마자 물을 마셨는지 확인하고, 이를 잘 닦았는지, 고양이 세수를 하는지, 옷은 구겨지게 입지 않았는지. 그런 아주 소소한 것들에 관심이 많다.

 콧구멍을 살펴보거나, 피부에 무엇을 바르는지까지도 궁금해한다. 적당한 온도로 잠을 자는지, 잘 때 땀이 나는지, 코는 고는지, 푹 잤는지와 같은 아주 작은 변화에 집중한다. 이런 것만 봤을 땐 그는 나에게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나처럼 자기 신경 써 주는 남자가 어딨냐?" 이 말을 비추어봤을 때, 그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닭다리를 좋아하는 것도 몰랐으면서.






 최근엔 에어프라이어로 통닭 만들기에 도전했다. 그리고 꽤 그럴듯하게 완성했다. 남편은 사진을 잘 찍지 않는데 통닭은 사진으로 남겼다. 내가 해주는 요리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조심스럽게 접시로 옮겨 노릇노릇하게 익은 통닭을 식탁으로 가져갔다. 한 손으로 시원하게 닭다리를 뜯어 그에게 줬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남은 닭다리도 다- 자기 먹어." 그러자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편은 닭다리를 좋아하니까, 소년처럼 양 손으로 닭다리를 들고 우걱우걱 먹고 싶은 게 그의 소원은 맞을 것이다.


 내가 만든 통닭을 그가 맛있게 먹으면, 솔직한 마음은 닭다리 그까짓 꺼, 안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뿐이다. 그가 잘 먹으면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보다 요리를 잘해서 놀라워."

 남편은 함께 살기 시작한 , 나를 다시 탐구하는 중인 듯하다.


 "당신은 나를 하나도 몰라. 날 좀 알아줄래?"라고 말하면

 재빠르게 "당신은 뭐 아는 줄 아냐? 당신도 나 하나도 몰라."라고 되받아 친다.


 하기야 남편이나 나나, 갑자기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모르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은데, 남편이야 나를 알까. 마찬가지겠지.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참 재밌다. 남편이랑 살면서 아는 척을 잘하는 내가 오만하다는 생각에 이마를 탁!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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