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박이 Jul 09. 2021

결혼생활이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수의 영역

이 부부가 사는 법

 결혼해서 살다 보면 아주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다 소소한 이유로 슬퍼지기도 한다. 남편을 바라보면서 ‘그래, 이 남자가 내 남자지! 참 행복하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내 팔자를 내가 꼬았지. 이 사람이랑 결혼을 왜 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넘실거리는 감정선을 주체할 수 없어 최악의 모습을 들키게 된다.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는 관계. 부모님은 어떻게 그리 오래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우리 같은 새내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에게 지킬 & 하이드가 되는데.  


 레프 톨스토이는 "부부가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할 때 그들의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한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정상일 수도 있다.




 결혼생활이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년을 더 산 부모님은 이제야 서로를 좀 아실 것 같다고 하시던데,


 혈기왕성한 우리는 서로 치대고 싸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치대다.’의 뜻을 살펴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몸을 기대는 행동으로 나를 귀찮게 하다.’라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아쫌.... 디다... 고만 치대라. (아... 제발.. 힘들다.. 그만 귀찮게 해라)”라고 말한다. 몸으로 엉겨 붙으며 귀찮게 치근덕대거나 힘들게 하는 것도 '치댄다.'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밀가루 반죽처럼 찐득하게 붙어 서로에게 치대며 살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결혼생활이 이런 거라면, 난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TV 보고, 당신은 방에 있고, 서로 남처럼 있는 게 결혼생활이냐고.

 결혼생활이 아니라 쉐어하우스지. 나는 좀 다를 줄 알았어.”    

  

 쉐어하우스라. 그와 함께 운영하는 쉐어하우스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거실을 오픈하고, 다양한 사람이 머무르면 덜 외롭겠지. 남편은 사람들이 많고 북적거리는 걸 좋아한다.

 나는 카운터를 보고, 그는 방 안내를 하고. 그가 쉐어하우스의 대장 역할을 하면 좋을 텐데, 매일 새로운 사람과 재밌는 일이 일어나면, 결혼 생활이 좀 더 풍요로워 질까.

 그는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나 보다. 함께 있는 데 외로운 게 더 고독할 텐데,

 그가 고독하다고 생각하니, 나도 고독해진다.      


 거실에서는 TV 소리가 나고, 나는 그가 만드는 작은 소음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그냥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나는 그와 다른 공간에 있다.


 남편은 이런 결혼생활을 꿈꿨다고 한다. 따뜻한 집, 웃음소리, 함께하는 저녁식사, 포근한 침대, 정돈된 빨래 등등. 나는 늦잠을 자고, 아침을 패스한다. 아침은 각자 해결하고, 빨래는 남편이 한다. 나는 주로 거실 청소 담당, 그는 화장실 청소를 담당한다. 저녁은 돌아가면서.. 적다 보니 남편이 말하는 쉐어하우스 같기도 하다.     





 

제럴드 브래넌은 결혼에 대해

 “행복한 결혼에선 보통 아내가 기후를 조절하고, 남편이 풍경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결혼생활의 큰 틀은 단조로움이다. 좋아하는 메뉴를 1년 내내 먹을 수도 있고, 맘에 드는 티셔츠는 몇 년이고 입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단조로움에 그새 적응이 될 테지만.

 이 남자는 꽤나 답답했나 보다.


 사실 같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함께 사는 건, 생각보다 단조롭지도 않다. 그 안에선 천둥과 번개도 치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친다. 몰아치는 잔소리, 가족 간의 이해관계 등등, 고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닐 때가 많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이처럼 결혼생활에는 사계절이 다 들어가 있고, 그래서 기후에 민감해야 한다. 사계절이 굉장히 변덕스럽게 변화하기 때문에.

  

풍경은 여름. 너무 치대고 있어 찐득거리는 사이.

우리는 현재 장마가 시작하기 직전처럼 꿉꿉하고 습한 상태다. 고독한 남자가 존재함으로.

   

 쉐어하우스라 말하는 남편에게 조식을 제공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레이더엔 우리의 온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알람이 떴다.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간과할 사항은 아니다. 그래서 기후변화가 시급하다. 온도를 조금 올릴 필요가 있다.


 새벽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직구로 헝그리 잭 팬케이크 가루를 시험해볼 차례다.


 '팬케이크 가루가 나미의 썬더볼트처럼 우리 집의 기후를 변화시키면 좋으련만.'


 볼에 가루를 툭 털어, 계란과 우유를 넣고 뒤적였다.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달궈진 팬에 반죽  장을 올렸다.  안에는 고소한 버터 냄새가 풍겼다. 기분 탓이겠지만, 신기하게도  안의 온도도 변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상함을 인지한 남편은 흙에서 막 캔 감자 같은 얼굴을 하며(잠에서   얼굴-) 어리둥절한 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뭐해? 왜 갑자기 아침에 요리를 해.”


 “아침해 줄려고! 팬케이크 먹고 가.”  

   

 “아니 무슨 갑자기 팬케이크야. 나 안 먹어! 시간 없어!”

 “기다려봐! 얼른 해줄게!”     


 불 조절에 실패해 몇 장은 탔다. 반죽은 역시 너무 많이 했다. 양 조절에 실패한 팬케이크가 잔뜩 만들어졌다. 어쩔 수 없지. 한 번에 여덟 장을 겹쳤다. 위에는 급하게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슈가 파우더를 툭툭 뿌렸다. 집안에 단내가 진동한다.    

  

  “자. 먹어! 내가 만든 거라고!”     

  잠에서 덜 깬 그는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떻게 해! 다 못 먹어.”


 남편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입을 먹더니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      

 나는 그 사이 빈 통을 하나 챙겨, 남은 팬케이크를 담아 그에게 건넸다.


 “이건 가져가서 먹어!”     


 남편의 가방에는 와이프가 억지로 챙겨준 팬케이크 도시락이 함께 들려졌다. 그의 가방에서도 단내가 났다.  "잘 다녀와! 파이팅!"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잘 먹었어요.”     


 이 메시지를 보자,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우리의 풍경은 어느 순간, . 

 적당히 치대며 살고 있다.

  

 기후 체크!

 다행히 온도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상태.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결혼 생활이 정상인지 아닌지 고민하며. 부모님처럼 능숙해질 수 있을까.

 한 30년쯤 살다 보면 이제 조금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전 06화 닭다리 그까짓 꺼, 안 먹어도 괜찮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