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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16. 2021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에 관하여

남편이 없는 집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남편이 없는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이 있어서 불편한 건 아니다. 그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요컨대 친정 집 내 방처럼.




 남편이 포천으로 파견을 가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게 홀로 남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친정에 갔겠지만, 집에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친정 집에 가면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그 집에선 난 여전히 아이일 뿐이다. 내가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참 좋다. 방에서 뒹굴거리면 엄마가 소리친다.  

    

 “밥 먹어!”      


 그런 이유로 친정 집이 좋다. 그 소리가 그립긴 하지만 언제까지 친정집으로 쪼르르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을 비우면 생길 문제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날파리가 더 생기면 어쩌지.’     


 최근에 어디서 생기는지 모를 날파리가 자꾸 주위를 맴돈다. 안 그래도 날파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인데, 집을 비우는 사이 그들에게 집을 점령당하면 어쩌나. 이런저런 고민들로, 집에 남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역시 집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나를 걱정해야 할 텐데, 집을 더 걱정한다. 그런 그의 태도엔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집 지키는 강아지도 아니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의도하지 않게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살짝 설레기도 한다.

 혼자 있으니 잔소리하는 남자도 없다.

 소파 다리를 쭉- 펴놓은 상태로 부엌까지 다섯 번은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그는 소파를 쭉 펴놓은 상태로 내려오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남편이 싫어했지, 참.' 소파 다리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청소나 해야지.’      


 둘째 날은 할 일없이 냉장고를 열어보다 청소를 시작했다. 사실 버려야 할 음식들이 있었는데 방치한 채 쳐다보지 않았다. 한 번 버리기 시작하니, 이것저것 버릴 게 많았다.      


‘엄마가 해준 반찬들이 다 상했네.. 아까워. 밥을 해 먹었으면 금방 먹었을 텐데, 돌아오면 집밥을 자주 먹어야겠다.’     


 남편이 없으니 생각보다 집이 넓다. 나도 모르게 청소를 하고, 침실을 정리한다. 가끔 혼잣말도 한다.    

  

 “이런 건 남편이 치워야지. 암.”     


 나는 주인이 돌아오길 바라는 강아지처럼 변해있다. 현관문을 바라보고, 남편이 돌아오는 날 '무슨 음식을 해 먹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잔소리하던 그의 목소리는 집에 남아있다. 나도 모르게 그가 있던 것처럼 행동한다.



    

 생텍쥐베리의 책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임'이 무엇인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나도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 텐데, 너는 말을 하지는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나는 벌써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즉,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될 거란 말이지.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결코 알 수 없을 거야.


 의존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생각보다 남편에게 길들여졌다는 생각을 한다.

 요컨대 정이 들어버렸다. 관계를 맺음으로써 어느새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친구나 강아지와 같은 애완동물과도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서로가 선택한 타인을, 법적으로 사이를 정의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나처럼 때론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니까.




 

 화요일에 남편이 돌아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월요일 아침, 속보가 눈에 보였다.      


 <속보> 포천 헬기 추락, 탑승 전원 생명엔 지장 없어     


 아침부터 남편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연락이 되지 않는 날엔 비행이 있는 날인데.. 불안한 예감이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사고 난 거 아니냐고, 이상하다. 그에게 답이 없다. 속보 기사가 쌓여갈 때 즈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포천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자기 아니지??”     

 “응 사고가 좀 났는데..”      

 “맞아? 당신이야? 다쳤어? 많이 다쳤어?!!”     

 “조금” (사이렌 소리)     

 “괜찮아? 괜찮은 거야?”

 “괜찮아.. 나 지금 병원으로 옮겨져서 가고 있으니까, 나중에 전화할게.”     


 남편은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붕대를 칭칭 감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괜찮다고 하는 남편, 그의 눈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일주일 동안 떨어져 있을 줄 알았던 우리, 몇 달은 떨어져 있게 생겼다. 가끔 남편이 없는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요즘 홀로 남편이 없는 집에 들어간다. 행복의 가치를 알게 해 준 남자는 화요일까지 온다고 말해놓곤 오지 않는다. 나를 맘대로 길들여놓고 같이 사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길들여졌다는 건 항상 상대가 사라져 버렸을 때 깨닫는 것 같다. 함께 살던 그는, 존재만으로 나에게 미완성된 안정을 주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어느 한쪽이라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느껴지지 않을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길들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세 시와 네 시, 이 한 시간의 기다림이 얼마나 무거울지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없는 집을 지키고 있다. 그가 집을 지켜달라고 했기에. 그가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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