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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18. 2021

결혼 준비는 저도 처음이라..

선택과 집중, 그리고 합의

 남편은 나에게 가끔

 “남성호르몬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석류즙을 좀 마셔보는 게 어때?”라는 말을 한다.


 나는 “내 호르몬까지 챙기는 거 보니,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것 같네.”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소파에 누워있거나 빈둥거릴 때, 생각보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때도 호르몬을 걱정한다.

 

 결혼 준비를 설렁설렁할 때도 그렇게 느꼈는지 석류즙을 사다 줬다.

 남편이 생각하는 남성의 모습은 뭘까.


 반대로 나는 그가 어떤 부분에서는 여성적이라고 느낀다. 선택을 할 때 나보다 예민하고 섬세하다. 남자라고 해서 꼭 투박하거나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무딜 때가 많다.      


 신기하게도 적은 양이지만 여성에게는 아주 적은 남성호르몬이 들어있고, 남성에게도 아주 적은 여성호르몬이 들어 있다고 한다.

 여자에게 이 작은 호르몬은 삶의 활력과 근육량에 영향을 미치고, 남성에게는 골다공증과 심장병의 위험을 줄여준다고도 한다.


- 사실 내가 빈둥거리거나, 또는 남편이 섬세한  호르몬과 전혀 관련이 없다. -






 결혼 준비를 할 때 일이다.

 남편은 본인의 턱시도를 고를 때도, 정장을 맞출 때도 신중했다. 테일러 샵에서 상담을 받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지루해졌다. 그는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고, 재질을 물어보고, 사이즈를 체크했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살짝 몽롱해졌다. 결국 흘끔흘끔 쳐다보며 핸드폰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식 드레스를 고르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고      


 “어때?”라고 물어보는 그에게  

    

 “음, 괜찮아! 멋진데?”라고 영혼 없이 말했다가 관심이 없다는 걸 들켜 버렸다. 그는 나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서운해했다.      


 반대로 본식 드레스를 고를 땐 간단했다. 네 벌의 드레스를 입어보았고, 남편이 세세하게 봐줬다.


 "목이 기니까 브이넥으로 하는 게 좋겠네요. 다리가 짧으니까 허리라인이 위에 있는 게 좋겠어요. 팔뚝은 가릴 수 있을까요?"


 너무 적나라한 표현으로 내 하자를 체크하는 바람에 플래너가 당황하긴 했다. 그래도 덕분에 드레스는 편하게 골랐다.      



 - 결혼 준비는 호르몬도, 남자와 여자라고 불리는 젠더의 성향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 -




 

   

 내가 예민했던 부분은 청첩장이었다.

      

 ‘고급스러운 네이비 색상과 정교한 양면 직물 무늬가 돋보이는 최고급 클래식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금박 후가공(Gold Foil Stamping)으로 제작해드립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줄 것이기에 신경을 쓰고 싶었다. 각자의 지문을 넣었고 청첩장 속 글귀도 신경을 썼다.      


 그는 나에게 “어차피 사람들 그냥 보고 버릴 건데 대충 해.”라고 말했고,  

 나는 “신경 쓰고 싶어. 결혼에 초대하는 초대장이잖아. 얼굴이라고.”라고 말했다.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대화를 포기한 채, 맘대로 하라고 했다. 청첩장이 나오자 그는 대충 하자고 말했던 말은 어느새 잊고 나와 함께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이며 꾸미기에 동참했다. 현재 청첩장은 예쁜 액자에 고이 넣어져 거실에 장식되어 있다.




 


 남편은 페이즐리 문양의 턱시도를 골랐다. 식장에선 본인도 주인공이니 멋진 걸 입고 싶다고 했다. 가끔 흰 턱시도를 입는 남편도 있다는 소리에 얼른 승낙했다. 결혼식 영상을 볼 때마다 화려한 페이즐리 문양을 입은 남편이 장엄한 시작을 알리는 록키 음악과 함께 등장한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웃기고, 그는 뿌듯한 얼굴을 한다.      



 - 지인들은 특별한 청첩장을 받고 행복해했다. 남편이 고른 페이즐리 문양 턱시도 덕분에 내 드레스도 자연스럽게 화려해졌다. 남편은 록키 음악을 골랐지만, 난 디즈니 알라딘 OST인 A Whole New World를 골랐고 더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러한 과정 또한 결혼 준비의 묘미가 아닐까. -






© shelbymary_, 출처 Unsplash





 결혼 준비는 합의의 연속이었다. 앞에 말했던 에피소드 외에도 무수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무진장 많이 다퉜다. 집을 계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맘에 드는 집을 고르기 위해선 포기하는 것들이 생겼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서운함을 느꼈다. 아주 조금씩 상대와 내 사이가 베베 꼬였고 결국, 갑자기 문제가 터져 크게 싸우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엉켜버린 매듭을 풀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 결혼생활이 빨간 맛일지 스펀지케이크처럼 달콤할지 대충 짐작하게 되는 결혼 준비는, '이제 시작이야. 마냥 달콤하진 않지?'라고 누가 억지로 알려주는 기괴한 알람 같기도 했다.


 결혼이란, 준비하는 과정부터 내가 볼 수 없던 것을 상대를 통해 보게 하는 것 같다. 남편의 눈으로 내가 보지 못한 걸 보게 하고, 내 눈으로 남편이 놓친 것을 찾게 한다. 그리고는 자꾸 시험해 들게 한다. 나에게 의구심이 들게 만들고 그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그러다 겨우 위기를 넘기면 한순간에 이래서 짝꿍이 되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출발선에 서게 된 거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결혼식을 무사히 끝냈다. 과정이 어떠했든 잘 치렀으니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봐도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어렵다. 빈둥거리고 설렁한 나라도 정말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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