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이 맞지 않는 남자와 가사를 모르는 여자는 노래를 신나게 부른다.
친구는 몇 년 전 미국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손, 발을 사용하고 번역기를 돌려 대화를 해도, 남편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대화의 문제인지 문화의 차이인지, 남편이 한국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그녀에게
“우리는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도 대화가 안돼. 차라리 외국인이었으면 언어 차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덜 날 거 같은데.” 라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한국어를 사용해 대화를 한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대화를 하다가 남편이 “또 맥락에 벗어나네.”라고 말하면 턱 하고 가슴이 막힌다. “내가 하려는 말이 뭐냐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남편은 답답하다는 듯이 회피해버린다.
나는 듣지 않으려는 남편 귀에 질척거리며 내 입장을 설명한다. 서로가 뫼비우스 띠처럼 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하면, 생각한다. 차라리 외국인이었다면, 문화 차이가 심해서 라고 생각했을 텐데...
결혼생활은 그런 점에서 문화 충돌이다. 삼십 년 넘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을 한 공간에 넣어두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국적 불문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문화는 충돌하는 셈이다. 서로의 문화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빅뱅이 일어난다. 소우주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거대한 블랙홀이 생길 수도 있다.
칼릴 지브란의 시 <결혼에 대해서>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같은 잔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같은 빵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그대들은 각자 혼자라는 걸 잊지 말라.
비록 같은 곡을 울릴지라도 류트의 현들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을 주되 다른 이의 마음을 붙잡아두려고 하지 말라.
오직 생명의 손만 그대들의 마음을 붙잡아둘 수 있기에.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이 서로 떨어져 서 있기에.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기에.
결혼은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라, 원하지 않은 일들이, - 일어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되면, 한 순간에 놀라 팡 터져 죽는, 개복치가 된 것처럼, 그런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처음엔 소리를 지르거나 방방 거렸다. 반응이 없으면 다시 길을 잃었다. 포기해버리는 것처럼, 표류하는 배마냥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 침몰될 것만 같은 기분에 일어났다. 그가 손을 내밀어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다시 한 배를 타고 노를 젓는다. 그런데, 그 과정도 결혼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내는 방식도 푸는 방식도 다른 우리의 공통점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를 뿐. 상대를 골탕먹이려 노를 놓을 때도 있지만, 함께 탄 배에서는 내리지 않는다. 나처럼 그도 결국 노를 젓고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프랑수와즈 사강은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라고 말한다.
내 생각엔 결혼도 열정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농땡이를 쳐도 함께 노를 저을 수 있는 열정! 그런 의지!
남편은 자주 노래를 부른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남편은 노래를 못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그의 표정은 진지하다. 나라면 부끄러워서 부르지 못할 텐데.. 너무나 당당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용감하다.
뻔뻔한 그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부른다면 싫을 텐데, 너무 웃기다.
그래서 남편을 바라보면 용기가 생긴다. 그를 따라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잘 모른다.
“누누 나나, 워 우어, 뚜비 두두 비.. 고마워요~” 맘대로 개사해 부르기 시작하면 남편은 기묘한 물체를 보듯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나보다 더 큰 소리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난장판 불협화음이다. 음이 맞지 않는 남자와 가사를 모르는 여자는 노래를 신나게 부른다. 우리가 다니는 곳곳마다 이상한 노래가 들려온다. 요상한 화음에 서로를 짠하게 쳐다보다 푸하하 웃는다.
다행이다. 둘 다 못 불러서.
“진짜 걱정돼서 말하는 건데 어디 가서 노래 부르지 마. 내 앞에서만 불러.”
남편은 내가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리고,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는 어느 순간
“누누 나나, 워 우어, 뚜비 두두 비..”
블랙홀과 소우주 사이 그 어딘가,
우리만의 바다에서, 함께 노를 저으며
우리만 아는 노래를,
결혼이라 불리는 노래(노동요)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