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과 화요일은 남편보다 출근이 빠르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찬물로 입을 헹구고 무의식적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수, 목, 금은 남편보다 출근이 느리다. 간편하고 손쉬운 계란 요리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출근하는 남편을 마중 나갈 여유도 있다. 신혼부부답게 엘리베이터까지 마중 나가
“잘 다녀와! 돈 많이 벌어와! 아자아자!”라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현관문이 닫히면 소파에 널브러져 눈을 감는다.
‘15분만 더 잠들자. 일어나면 침대 정리를 하자. 남편이 머리카락 떨어진 걸 싫어하니까 눈에 보이면 치우자. 적어도 7시 10분까지는 나가야 여유로울 거야. 5분만 더 자고 일어나자.’
눈을 감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순식간에 알람이 울리면 허겁지겁 화장을 하고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20분의 단잠과 10분의 출근 준비, 남편이 나가면 난 잠시 눈을 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정신없이 마음을 가다듬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다.
우리는 자주 싸운다. 서로를 괴롭히는 이 지독한 싸움은 짧게는 매일, 길게는 매주, 끊임없이 지속된다. 서로가 질려버릴 때까지 가시가 돋친 말을 해댄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뒤섞이면 얻을 것 없는 상처만 가득하다. 그런 싸움의 결과는 패배감, 만신창이가 된 승리, 좌절뿐이다.
감정이 극에 달할 땐, 이성이 마비된다. 눈물과 콧물, 고성이 오간다. 가슴이 턱턱 막혀 침대에 드러눕는다. 눈물에 얼룩진 습한 정적이 맴돈다. 절대 섞일 수 없는 묵음이, 그 고요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이끌리게 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된다. 이 집은 나를 철학자로 만들고, 그를 인내자로 만든다.
바보 같은 내 남자는 눈치를 보며 슬며시 다가온다. 자존심이고 뭐고 간에 손만 잡으면 싸움은 끝날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손을 잡고 싶다. 오고 가던 말들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다. 그의 손을 찾노라면 방 안의 공기가 조금씩 바뀐다.
남편의 엄지 손가락을 잡는다. 그러면 그는 이내 답답한지 “답답해. 손 말고 발 잡아.”라고 말한다. 아마도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한 작은 발버둥일 것이다. 남편은 손을 거두고 발을 턱! 내 다리 위에 올린다. 그렇게 우리는 매번 싸움과 화해를 반복한다.
화해의 제스처들은 다양하다. 손을 잡거나,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거나, 맥주를 한 캔 따거나, 그렇게 상대방의 관심을 유도한다. 공간은 하나, 사람은 둘, 주어진 시간 안에 화해하지 않으면 지지부진한 감정 소모가 계속된다. 지독한 싸움의 순간은 매번 돌아오고 집 안에 감돌던 차가운 공기는 매번 뜨겁게 순환된다.
남편이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한다. 닭을 깨끗이 씻고, 지방을 제거한다. 큰 냄비에 닭이 잠길 만큼 물을 부어 닭을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냄비 위로 불순물이 하나, 둘 떠오른다. 수저를 이용해 거품을 하염없이 걷어낸다. 어느 정도 깨끗해진 닭 육수에 큼직하게 썬 감자와 당근 등 각종 야채를 넣는다. 칼칼한 걸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도 평소보다 많이 넣는다.
닭볶음탕이 익어갈 때쯤이면 집 안은 매운 냄새가 진동한다. 거실에 있던 남편은 궁금한지 부엌으로 들어온다.
“잘되고 있어?”
나는 남편을 쳐다보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닭볶음탕이 부글부글 끓어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다 됐어!!” 라고 소리치면 그는 수저와 젓가락을 허겁지겁 챙긴다. 그리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있다. 따끈한 닭볶음탕을 식탁 한가운데 턱 올려놓는다. 서로 마주 보며 함께 밥을 먹고 음식 맛을 논한다.
남편은 옅은 미소를 보이고, 맛있다고 말한다. 매콤한 닭볶음탕은 이상하게 이해되지 않던 그를 이해하게 만들고, 고요한 집에 소음을 일으킨다. 그러면 그와 나의 차이가 메꿔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식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그는 설거지를 하고 난 식탁을 닦는다. 설거지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무언의 위안을 받는다.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손을 내밀고 나는 그의 손을 꼭 잡는다. 그와 나의 사이는 그 순간 보다 좁혀지고 가까워진다.
짐 싸는 시늉을 몇 번이고 했다. 남편은 그때마다 “진짜 나가기만 해 봐!”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린 남이 될까. 나는 그와 남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는 이 집에 속해있다. 다소 유치한 으름장에 변덕스러운 내 마음은 내심 안도한다.
우리는 여전히 정답을 알지 못한 채 덜컹거리는 에메랄드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도착한다. 그 속엔 노랗게 바랜 인터폰과 새로운 가전, 가구가 있다.
집 안의 공기는 매번 순환되고, 소음은 여전하다. 수압은 좋지 않고, 윗집은 여전히 새벽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춘다. 우리는 똑같이 짜증을 내며 깨어나고, 출근 전 20분 늦잠을 잔다. 서로를 떠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만의 외딴섬으로, 그렇게 다시 남의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