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박이 Aug 12. 2021

작고 가볍고 사소한 것들

위대한 결혼생활

 결혼생활은 결국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주말 아침, 무료함에 냉장고를 뒤적거리다 장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남편이 피자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코스트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높은 천고에 넓은 창고형 매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함께 아이쇼핑을 하다가 식품 코너에 가서 이것저것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남편이 한마디를 뱉었다.      


 “자기야. 토마토 사야 한다고 했지? 식품 코너 가서 얼른 사 가지고 와. 난 여기 운동복 좀 구경하고 있을 테니. 일 다보면 저어기- 전자제품 코너쯤에서 만나자.”

     

 “같이 가야지.”    


 “나 여기서 볼 거 있어서 그래. 괜히 두 사람이 다 토마토 사러 다녀올 필요 없으니까 얼른 갔다 와.”   


 “나 혼자 식품코너까지 가서 토마토를 들고 다시 이리로 오라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니 연인인지 부부인지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함께 카트를 끌고 장을 보고 있었다.


 남편은 함께 장을 본다는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닐까. 내가 생각했던 장보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가 생각한 장보기는 뭐지.. 혹시 이 남자, 동선 계산해서 효율성을 따지고 있는 거야?


 전자제품 코너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서 같이 토마토를 사러 가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실랑이를 벌인다.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얼굴을 찡그린다. 유난을 떤다고, 그러다 언성을 높이면 엄청나게 부끄러울 거라는 걸 알아서, 소곤소곤 서로에게 불만을 이야기한다.


 “알았어. 알았어. 같이 운동복 보고 토마토 사러 가자고!”     


 잠깐의 실랑이에 기분이 상한 나와 남편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며 툴툴거린다. '이게 싸울 문제니?' 그러다 어느새 눈에 보이는 저 과자가 얼마나 맛있는지, 저 부위의 고기의 맛은 어떻다더라, 요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몇 그람이나 필요할까? 저 쪽에 있는 게 더 좋아 보이네, 아니다 저 정도면 충분해. 세일한다. 이거로 할까?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간다. 그러다 보면 언제 싸웠냐는 듯 초반 대치상황에 대해선 금방 잊는다.


      




 결혼생활은 또한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구매해야 할 목록 중에 칫솔이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칫솔은 다른 칫솔보다 아주 조금(?) 비쌌다. 북유럽 감성의 귀여운 디자인이었으니까.


 남편은 “칫솔이 다 똑같은 칫솔인데 이쁘게 생겼다고 비싸게 살 이유가 있어?”라고 말했고


 “화장실에 두면 귀여울 거 같은데. 이 닦을 때마다 기분 좋을 거 같다구.


 “다 똑같은 칫솔인데 귀여운 칫솔이 무슨 소용이야. 이거 아기용 아니야? 자기가 아기야?

 비합리적인 소비지. 노노-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난 사고 싶은데..”

 “여기서 계속 칫솔 때문에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토마토나 사러 가자.”

 “그럼 우선 카트에 넣고 가면서 생각할까?”

 “아니야. 우선 식료품 코너로 가면서 고민해보자.”

 “난 사고 싶은데! 살래!”

 “굳이? 진짜 이건 아닌 거 같아.”




    


 세상에 수많은 선택과 결과들이 있다만, 칫솔 하나 는 일이 나에겐 회사 업무보다도 힘들게 느껴진다. 서로 카트를 앞뒤로 밀면서, 버티기를 한다. 이런 부질없는 이유로 또 싸우는구나. 코스트코 한가운데서 또다시 실랑이를 벌인다. 망할-, 귀여운 칫솔 탓인지, 내 탓인지, 남편 탓인지, 도착할 때부터 사소한 걸로 삐그덕 거리더니 또 싸운다. 우린 왜 이러는 걸까, 이유도 모르겠다.    

   

 실랑이를 하고 있는 와중에 한 커플이 다가왔다. 여자가 “꺄! 칫솔 너무 귀엽다. 살까?”라고 말하자 남자가 “사자!”라고 말했고 칫솔은 몇 초도 안돼서 그들의 카트로 쏙 들어갔다. 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토마토도 그렇고, 칫솔도 그렇고 왜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은 건데!!!”  


 남편은 시한폭탄을 만난 듯 당황한 표정으로 급하게 칫솔을 카트에 넣었다. 사소한 걸로 싸우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다른 사람들이 힐끔 거리며 우리를 피하는 순간까지 온 것이다.  


  


 


 결혼생활은 매번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집에 도착해서 코코*(코스트코를 줄여 부른다. 주로 코코 갈까?로 활용)에서 사 온 피자와 핫도그를 바닥에 깔았다. 우리는 언제 싸웠냐는 듯 피자 냄새에 감탄하고 엄청난 팀워크로 상을 차린다. 남편은 전부터 핫도그 핫도그 노래를 불렀었다. 그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피자를 뜯는다. 서로에게 핫소스를 뿌려주며 이야기를 한다. 칫솔이 비싼데 이유가 있겠지, 다음부터 내가 같이 쇼핑하자고 하면 무조건 같이 다녀, 알았어. 핫도그 한 입 먹어볼래?, 맛있네, 피자는 종류가 이거 하나였던가, 다음에는 다른 맛도 먹어보자.


 무슨 이유로 왜 싸웠는지 그새 잊는다. 잊는다기보다 질질 끌기엔 너무 작고 사소하고 가볍고 유치해서 넘겨버린다.  

 뒷정리를 누가 할 건지, 음식물쓰레기를 언제 버리러 갈 건지, 이런저런 이야기로 또다시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밤이 늦어지면 새로 산 칫솔로 함께 양치를 한다. 그리고 언제 다퉜는지도 모르게 한 침대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그렇다. 결혼생활은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나는 가끔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잘 지내?”

 그녀는 연년생으로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에게 “잘 지내?”라고 묻는다.


 “잘 지내지. 가끔 싸우는데 그거 말곤 재밌지 뭐.”

 “뭐 때문에 싸우는데?”

 “그냥 사소한 거. 말하기도 민망한 것들이야.”


 그러면 친구는 웃으며 말한다.

 “야 싸울 체력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난 애 돌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렇게 별 소득 없는 통화가 끝나고 나면, 우두커니 생각한다. ‘이 짓을 평생 해야 한다니.’

 남편도 아마 같은 생각일 거라 생각한다. 너무나 사소해서 어디 가서 말할 수 없는 유치한 다툼이 매번 일어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린 누구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한다. 그리곤 속으론 서로에게 치명적인 단점이나 문제가 있고 그나마 서로가 매우 착해서(?) 또는 매우 못돼서 이 정도쯤은 받아주는 거라고, 저런 성격을 누가 받아주냐, 나정도 되니까 받아주지.라고 생각한다.


이전 12화 짐 싸는 시늉을 몇 번이고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